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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학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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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남도엔 봄꽃이 찾아왔다. 겨울바람을 뚫고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벌써 봄바람에 꽃잎을 떨군다. 다음 차례는 노란 산수유 꽃이다.

전남 구례군은 국내 최대 산수유 산지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산수유 70%가 구례에서 난다. 풍부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양 덕분이다. 매년 이맘때 산수유 축제를 열었던 구례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를 취소했다.

산수유나무는 자생종은 아니다.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에 있는 산수유 시목(始木)이 증거다. 마을 주민이 할머니 나무라 부르는 이 나무는 한국에 처음으로 심은 산수유나무다.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인이 가져와 한국에 처음으로 심었다는 전설도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지만 마을 주민은 매년 시목에 풍년을 비는 시목제를 지낸다.

빨간 산수유 열매는 예부터 귀하게 여겼다. 『동의보감』 등엔 산수유 열매가 생장과 발육, 성 기능 등 생명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구례가 국내 최대 산수유 산지로 떠오른 건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등에선 공납(貢納)을 위해 구례에서 산수유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시고 떫지만 약재로 쓰이는 산수유가 이 지역 특산품이었다. 서양에서도 산수유를 즐긴다. 이탈리아 등 유럽 남부에선 산수유 열매를 따서 시럽 등을 만들어 먹는다.

구례 산수유가 전환점을 맞은 건 1970년대 새마을 운동기다. 소득작물로 떠오르면서 빈 집터나 휴경지를 활용해 산수유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까지 산수유 묘목이 지역 농가에 무상으로 보급한 것도 구례 산수유 마을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산수유 재배는 벼농사보다 주민들에게 더 큰 수익을 안겨줘 자식들 등록금을 책임지는 대학나무로 불렸다. (농촌진흥청 『그린매거진』) 구례 산수유 농업은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로 지정됐다. 삶과 어우러진 농업경관, 전통농법의 유지와 전승, 천 년의 역사와 문화 등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의 사랑이다. 노란 꽃이 지고 빨간 열매를 맺는 것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에도 계절은 돌고 또 돈다. 계절이야말로 영원불멸이다. 산수유가 빨갛게 익어갈 즈음엔 또 어떤 계절이 펼쳐질까.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