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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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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정치는 바른 것(또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 돼버린 시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이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정치인 발언이 ‘바른 것’과 거리가 멀다는 걸 모르는 이는 적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건 드문 법”이라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비아냥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정치인이 태생적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다. 소신이나 진실 대신 지지층이 원하는 발언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대의 민주주의의 특성 때문이다. 그 바닥에서 진실을 말하는 자가 소수인 이유다.

정치인들은 정치 입문 전 각 분야 전문가였을 때만 해도 존중받는 존재들이었다. 대중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일단 정치인의 외피를 걸치면 발언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언행의 순수성까지 덩달아 의심받게 된다. 정계 진출 발판용 사탕발림이었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의구심의 강도는 전문가 시절 가졌던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지난해 총선 직전 법복을 벗고 여의도로 몰려갔던 판사들은 비교 대상이 드물 정도로 큰 비판을 받았다. 지지층 유혹을 위한 ‘판결 오염’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 대열에 합류할 모양이다. 전격 사퇴와 정치 입문 선언을 같은 날 하지 않을 정도의 정무 감각은 발휘했지만, 일련의 3월 행보는 분명 정치인의 그것이었다. 미구(未久)에 현실화할 정치 입문 이후 윤 전 총장 발언의 신뢰도 역시 급강하할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큰 칼 휘두르던 그의 총장 시절 행보까지 정파적 이해에 기반을 둔, 오염된 지휘권 행사가 아니었느냐고 의심받게 됐다는 점이다.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듯 보이는 마당에 부질없는 얘기겠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 좋겠다. ‘완벽한 정치적 독립성을 보여준 최초의 검찰총장’ 상(像)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정치인으로의 변신이 그 가치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검사 윤석열과 달리 정치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아직 지지해야 할 확실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더욱 아쉽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