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성 이사 모십니다"…기업 요즘 女임원 구하기 경쟁 치열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1월 서울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WCDKorea) 창립 4주년 포럼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이사회의 미래'에서 패널로 참석한 배보경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WCDKorea) 창립 4주년 포럼 '여성의 경영 참여 확대:이사회의 미래'에서 패널로 참석한 배보경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량감 있는 여성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두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자본시장법 개정안) 때문이다. 임원급 여성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외부 여성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해 물밑 작업에 한창이다.

내년 8월 시행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에 대해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이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기업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2019년 결산 기준) 147곳 중 여성 등기임원(사내·사외이사)이 있는 곳은 46곳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적용을 받는 기업 중 여성 이사가 한 명 이상인 기업이 31%에 불과한 셈이다.

국내 100대 기업으로 대상을 좁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100대 기업 중 70곳은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다. 이들 기업의 사내·사외 이사회 인원(2020년 3분기 기준)은 총 756명이지만 여성은 39명으로 5%에 불과하다.

이는 전 세계 기업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연구기관인 CSRI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글로벌 기업 이사회의 여성임원 비율은 21%로 나타났다.

여성 사외이사 영입 치열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매일유업 본사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대리점 분야 모범업체 현장방문 및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매일유업 본사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대리점 분야 모범업체 현장방문 및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내 임원급 여성을 키워내지 못한 기업들은 여성 사외이사 유치에 한창이다. SK㈜는 이달 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이사 사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고 5일 공시했다. 2014년부터 매일유업 대표이사를 맡아 온 김 후보자는 국내 우유 가공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SK㈜ 측은 “김 대표는 매일유업의 기업 가치를 증대하는데 기여한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동시대 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회사의 소통 능력을 더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K㈜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은 2015년 통합 지주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LG도 26일 정기 주총에서 이수영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홀딩스 집행 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고 지난 4일 공시했다. 올해 LG그룹은 ㈜LG·LG전자·LG유플러스·LG하우시스· 지투알 등 5개사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내년에는 LG화학·LG생활건강·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다.

올해 현대자동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도 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잇달아 선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 24일 정기 주총에서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 우주공학 부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제철 등도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후보를 확정했다. 지난달 26일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상장사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총 안건을 공개했다.

LG그룹은 이수영씨 등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왼쪽부터 ㈜LG의 이수영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홀딩스㈜ 집행임원, LG유플러스의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 [사진 LG그룹]

LG그룹은 이수영씨 등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왼쪽부터 ㈜LG의 이수영 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홀딩스㈜ 집행임원, LG유플러스의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 [사진 LG그룹]

삼성그룹은 계열사의 기존 여성 사외이사를 재선임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17일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김선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를 재선임하기로 했다. SK텔레콤도 이달 25일 주총에서 윤영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후보군은 사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교수나 기업인, 법조인, 전직 관료 등이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전문가 인력이 많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전언이다. 사외이사는 최대 6년간 선임할 수 있기에 한 차례 재선임 기간이 끝나면 새로운 인물도 찾아야 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한 기업의 경우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은 사람을 중복으로 선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SG에 여성 인력 확보 가속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맥도날드 여직원들. [사진 한국맥도날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맥도날드 여직원들. [사진 한국맥도날드]

전 세계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에 따라 사내 여성 임원 발굴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 지표에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포함되고 있어서다. 지난 2018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외국계 기업의 여성 임원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케아코리아는 여성 관리자의 비중이 50%, 한국맥도날드는 44%에 이른다. 반면 국내 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 비율이 40% 이상인 곳은 손에 꼽힐 정도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9년 1분기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2072개 상장법인 전체의 임원 성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클리오(71%), 본느(50%), 한섬(42%) 등 세 곳에 불과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ESG 경영의 일환으로 성별 다양성에 관한 요소가 투자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기업가치를 위해서도 여성 인력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