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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신입생 미달 겹쳐…지방 대학가 ‘임대’ 광고만 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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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3일 낮 12시30분 대전시 대덕구 한남대 학술정보관 입구 주변 상가. 점심시간인데도 골목을 오가는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신학기를 맞아 식당은 물론 예년 같으면 학생들로 붐볐을 식당과 커피숍도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대학가 상가마다 빈 점포, 원룸 절반은 공실 #비대면 위주 강의…학생 찾아보기도 어려워

코로나 여파로 빈 점포 늘어…상인들 "기약 없다" 한숨

골목에 길게 늘어선 상가마다 ‘임대’를 알리는 종이(A4)가 붙어 있었다. 4층짜리 한 건물은 1층과 2층, 4층, 지하가 모두 빈 상태로 몇 달째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옆 건물에 있는 커피숍 사장은 “1층 커피숍이 문을 닫은 지 오래됐는데 언제 임대가 될지는 기약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1학년도 1학기가 시작된 지난 2일 낮 12시30분. 대전 대덕구 한남대 인근 상가 골목이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신진호 기자

2021학년도 1학기가 시작된 지난 2일 낮 12시30분. 대전 대덕구 한남대 인근 상가 골목이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신진호 기자

신학기를 맞은 전국 대학가 상권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1년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는 대전을 비롯해 광주와 부산 등 지방 대도시 주요 대학에서 신입생 충원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서 상권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상인들은 “이러다가는 2~3년 뒤면 상가 절반은 폐업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마다 비대면 수업으로 상가·원룸 '이중고' 

상가와 함께 대학가 주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원룸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부 원룸은 공실률이 절반을 넘은 지 1년이 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각 대학이 비대면 위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기숙사는 물론 원룸까지 빈방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한남대의 경우 25명 이상 강의는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전공과목과 예체능계열 학과는 교수 재량과 학생 의견을 들어 대면 수업이 이뤄지도록 방침을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대면 수업을 꺼리면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배재대와 목원대도 실험·실습을 제외한 전공과 교양과목은 비대면 강의로 진행 중이다.

지난 3일 광주지역 대학가에 붙어 있는 '원룸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 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임대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광주지역 대학가에 붙어 있는 '원룸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 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임대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대전지역 대학가 주변 원룸과 부동산 사무소에는 원룸 전·월세를 알리는 전단이 빼곡하게 붙었다. 원룸 주인들은 수수료라도 아끼기 위해 직접 임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부 부동산 사무소는 학생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고 원룸을 소개했다.

한남대 정문 인근에서 10년 넘게 원룸을 임대하고 있는 김모(55·여)씨는 “작년에는 방 12개 중에서 10개가 나갔는데 올해는 절반인 6개만 임대됐다”며 “혹시나 해서 매일 학교 주변을 오가지만 학생 구하기가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신입생 미달사태 광주 대학가, 식당·커피숍도 문 닫아

신입생 미달사태가 발생한 광주지역 주요 대학가 상권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일 오후 찾은 전남대와 호남대 주변 상가에서도 빈 점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주 고객인 돈가스집과 김밥집은 물론 커피숍, 휴대전화 판매점까지 문을 닫았다. 5층짜리 신축건물은 1층이 빈 상태로 몇 달이 지났다고 한다.

원룸은 사정이 더 심각했다. TV와 냉장고·침대·책상·옷장 등을 제공하는 신축 건물도 예외가 없었다. 원룸을 구하는 학생이 없다 보니 업주는 물론 부동산 중개사무소 직원들도 사실상 손을 놓았다. 호남대 인근에서 만난 부동산 사무소 관계자는 “올해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겨우 버텼는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 3일 광주광역시 호남대 인근 상가에 붙어 있는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광주광역시 호남대 인근 상가에 붙어 있는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충북 청주시 복대동 충북대 인근 상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입생 충원율 100%를 채웠지만, 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많지 않아서다. 그나마 등교한 학생들도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외부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학교 인근 식당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영업제한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후 8~9시쯤 문을 닫는다.

충북대 정문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20년째 가게를 운영하지만, 작년과 올해처럼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신학기면 예약을 받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그런 때가 다시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매출 하락에 재룟값 상승까지…아르바이트 자리 줄어

매출 하락으로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로 상인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오르는 재료 가격을 음식값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500~1000원에도 민감한 학생 손님이 더 줄어들까 걱정해서다. 점포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영업시간을 줄이면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예전보다 힘들어졌다고 한다.

지난 3일 광주광역시 호남대 인근 원룸에 붙어 있는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임대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3일 광주광역시 호남대 인근 원룸에 붙어 있는 '임대 안내문'.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마다 비대면수업이 진행중인데다 신입생 충원율까지 줄면서 임대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청주시 모충동 서원대 인근 원룸촌에서는 개강 이후에도 골목에 나와 학생 손님을 찾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매년 보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월세를 10% 이상 낮춰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원룸을 운영하는 주인들이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상인들 "코로나 완화해도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지방 대학 주변 상가·원룸 불황은 코로나19 사태가 완화하더라도 예년 수준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전과 광주·부산 등 대도시 주요 대학에서 신입생 등록률이 80~90%대까지 떨어진 데다 학령인구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어서다.

광주·전남지역 거점 국립대인 전남대도 신입생을 미달 사태를 피해 가지 못했다. 용봉캠퍼스는 83개 학과 가운데 사범대 등 4개 학과에서 정원이 미달했고, 여수캠퍼스에선 27개 학과 중 22개 학과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사범대 정원 미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전·청주·광주=신진호·최종권·진창일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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