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화성 탐사선과 대통령의 가덕도 순시선

중앙일보

입력 2021.03.0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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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화성의 대지를 보았다. 아득한 지평선까지 펼쳐진 검붉고 광활한 황무지였다. 화성의 바람소리를 들었다. ‘휙’ 하며 스치는 짧은 잡음이었지만 화성에도 바람이 분다는 게 경이로웠다. 인간이 처음 접한 화성의 소리라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로버(탐사선)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인내)’가 4억7200만㎞를 날아간 뒤 지난달 18일 지구로 보내온 착륙 장면의 실시간 동영상과 사진들이 우주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미국 화성 탐사가 주는 도전과 희망
과거 묶인 한국에서 꿈과 미래 실종
윤석열 없는 ‘검수완박’이 개혁인가
감동과 설렘이 없으면 죽은 사회다

퍼서비어런스는 40억년 전 물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예제로(Jezero) 분화구 일대에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인간의 거주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흙과 암석을 채취해 지구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2050년까지 100만 명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고 공언한다. 인간이 화성에 사는 공상과학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퍼서비어런스에 감동하며 소개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미지의 신세계를 향한 도전과 용기,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 사람 사는 맛이라는 진리에 가슴이 뭉클했다. 대한민국이 이걸 잃어버렸다는 암울한 현실이 아팠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과학의 힘, 미국의 창의력,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자랑했는데, 그들의 저력이 부러웠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는 이처럼 생산적 진보정신이 만드는 것이다.

화성 탐사를 보다가 우리에게도 꿈이 있나 되돌아본다. 이 정권에서 내일·미래·희망·설렘이란 단어가 실종됐다. 4년 내내 아픈 과거를 후벼 파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에만 끌려다녔다. 적폐몰이로 정적에게 가한 증오와 복수는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이랬겠구나 하는 간접 경험을 강요했다. 독립군인 양 환상 속에 친일파와 토착왜구 축출이란 사명을 띠고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는 집권 세력은 일제시대의 치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문빠’는 홍위병이 설쳐대던 중국의 문화혁명을 떠올렸고, 망한 나라들의 포퓰리즘을 학습하게 했다.

문재인 정권의 남은 1년은 달라질까. 저항의 마지막 보루로 버티던 윤석열 검찰총장마저 제거한 뒤 성취하는 권력형 비리가 없는 깨끗한 정부, 부산을 세계적 물류허브로 만들 가덕도 신공항 건설, 나라 곳간이 텅 빌 때까지 돈을 쓰는 ‘화수분 정부’가 이 정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전이다.

월성 1호 경제성 조작,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조국 가족 의혹 같은 비리 사건이 없는 평온한 세상이 올지 모른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한 박탈) 시대가 다가왔다. “우리 총장님”이라고 치켜세우던 윤석열이 자신들의 비리를 캐자 집요하게 내쫓겠다며 탄압하더니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기어이 검찰의 수사권 해체를 밀어붙이며 윤석열 몰아내기에 성공했다.

이제 부패·공직자 등 6대 범죄의 검찰 직접수사를 다 빼앗고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는 법안만 통과하면 저들의 뜻은 완성된다. 최강욱·황운하 의원 등 불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들이 주도하는 개혁이 바로 이런 그림이다. 윤석열의 지적은 정확하다. “내가 밉고, 검찰이 밉다”고 하루아침에 검찰 수사권을 빼앗는 입법 횡포는 “권력자에 치외법권 주는 셈”이다. 이런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은 죽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덕도 앞바다에 순시선을 띄우고는 “가슴이 뛴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28조원짜리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일사천리로 추진된다. 여당에서조차 “하천 정비도 이렇게 안 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지방의 어느 공항처럼 고추 말리는 공항이 될까 걱정하는 국토부의 반대도 소용없다. 퍼서비어런스 계획에 투입된 돈이 27억달러(약 3조원)이다. 화성을 10번 탐사할 수 있는 돈을 바다 메우고 활주로 까는 삽질공화국 건설에 쓴다. 4·7 보궐선거가 얼마나 다급하면 저럴까 하는 동정심도 가지만 ‘국민의 대통령’이 할 이벤트는 아니었다. 선거에 눈이 멀어 절차적 정의와 상식이 무너졌다.

재난지원금이든 위로금이든 줄 수 있다. 나라가 거덜 난다고 발작을 일으키는 건 과장된 반응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핑계로 선거용으로 여한 없이 뿌려보겠다는 심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돈의 힘을 봤다. 뿌리면 된다는 확신을 갖은 듯하다. 개처럼 벌어 나라 곳간을 채워준 건 국민인데 586운동권이 적선과 선심을 베풀며 정승 행세를 한다. 국민의 의식수준을 60~70년대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로 퇴보시키고 싶은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100억대 투기 의혹은 정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읽게 한다. 그들도 보고 배웠다. 거짓말하는 대법원장, 감옥의 담장 위를 걷는 잠재적 범법자들의 개혁, “우리 편에 서라”고 외치는 장관, 범죄를 ‘신내림’이라 둘러대는 공무원의 농단에 한 숟가락 얹은 것에 불과하다. 총체적 도덕 붕괴 현상이다. 비겁한 인물들이 이끄는 나라에서 어떻게 ‘가슴이 뛴다’는 희망을 품겠는가.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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