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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정세권이 살린 한옥…북촌 한옥역사관 문연다

중앙일보

입력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과 재동, 삼청동 일대에 몰려있는 한옥마을.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있는 데다 한옥 특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관광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이곳에 '북촌 한옥역사관'이 3월 1일 문을 연다.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을 있게 한 '건축왕' 정세권을 기리기 위해서다.

한옥, 우리 집을 지키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마련된 북촌한옥역사관. 3월 1일부터 문을 연다. 사진 서울시

서울 종로구 계동에 마련된 북촌한옥역사관. 3월 1일부터 문을 연다. 사진 서울시

정세권(1888~1965)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을 실시한 사람으로 188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 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한 뒤 지금의 북촌에 땅을 사들였다. 땅을 사들인 그가 지은 것은 양반가의 집을 작게 만든 한옥. 작은 한옥들을 촘촘하게 지어 '한옥 단지'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가옥이 늘어나자 이를 안타까워했고, '조선집'으로 불리는 한옥을 지어 분양에 나섰다. 그 덕에 생겨난 북촌 한옥마을은 당시 우리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지켜내는 기반이 됐다.

한옥 보급에 나섰던 그는 부동산 개발로 벌어들인 돈을 독립운동에 쓰기 시작했다.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에 자금 지원을 했다. 정세권은 조선물산장려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고, 조선어학회 회관도 기증했다. 그의 재정지원으로 어선어학회는 최초의 한국어 사전을 간행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엔 왕십리 일대 땅을 사들였다. 춘원 이광수에게 가회동 집을 빌려준 것도 그였다. 1942년 일제가 조선어학회 관련 회원을 체포하고 나서면서 그의 상황도 어렵게 됐다. 정세권 역시 체포돼 고문에 시달렸고, 이듬해 왕십리 일대 땅을 강탈당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크게 다쳤던 그는 1950년대 말에 고향으로 돌아갔고, 15년 뒤 사망했다.

북촌 한옥역사관 개관

북촌한옥역사관 내부 전경. 사진 서울시

북촌한옥역사관 내부 전경. 사진 서울시

서울시는 정세권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북촌, 민족문화의 방파제'란 주제로 종로구 계동에 마련한 북촌 한옥역사관에서 상설전시회를 3월 1일부터 연다. 서울시는 “3·1 운동 이후 일제 문화통치에 반발해 점차 영역을 확장한 조선집을 통해 우리 고유 일상생활을 지켜내고 민족문화를 유지·발전시키는 거점이 된 한옥을 집중 조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대 도시형 한옥으로, 가운데 중정을 두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한옥 가운데 건물이 있는 ‘중당식(中堂式) 한옥’도 살펴볼 수 있다. 처마에 함석을 사용하는 등 실용성을 더한 것도 특징이다. 건축왕 정세권의 생애와 독립 운동을 재조명하는 전시도 마련했다.

서해성 서울시 역사재생 총감독은 “정세권 선생이 도시형 한옥을 공급해 만든 자금으로 조선어학회를 지원한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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