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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귀순 남성, 북한 돌려보낼까봐 군 초소 피해 월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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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6일 동해로 월남한 북한 남성은 자신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군 초소를 피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서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 남성이 왜 군 초소를 피해다녔느냐’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질문에 “군 초소에 들어가 귀순하면 ‘나를 북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래서 민가로 가려고 했다고 한다”며 “군인들이 무장하고 있어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야당 “북 허위선전 증거, 대책 필요” #정부, 지난해 북 주민 2명 강제추방 #배수로 3개 있는지도 몰랐던 군 #“해안쪽 지뢰 있어 정찰 못해” 해명 #CCTV에 8차례 포착됐지만 놓쳐 #알림경고 뜨자 오작동 착각해 꺼

하 의원은 “북한 내부에서는 한국에 탈북자가 가도 돌려보낸다고 허위 선전을 하고 있다. 그 증거가 이번에 온 사람”이라며 “탈북하고 싶어도 군이 탈북자 편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동해에서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북한으로 강제 추방했었다.

지난 16일 오전 4시12분쯤 강원도 고성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CCTV에 포착된 ‘헤엄 귀순’한 북한 남성(왼쪽 아래 원). 여기에서만 세 차례 포착됐으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TV조선=연합뉴스]

지난 16일 오전 4시12분쯤 강원도 고성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CCTV에 포착된 ‘헤엄 귀순’한 북한 남성(왼쪽 아래 원). 여기에서만 세 차례 포착됐으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TV조선=연합뉴스]

서 장관은 ‘최초 보고를 언제 받았느냐’는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의 질의에 “(16일) 오전 6시 조금 넘어서 알았다”면서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했으면 금방 (보고)했을 텐데 (감시병이) 출퇴근하는 간부 정도로 상황을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헤엄 귀순’ 경계 실패를 자인하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북한 남성이 상륙한 직후 감시 카메라에 다섯 차례 포착돼 두 차례 알림 경고가 떴는데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군은 이전에는 북한 남성의 이동 경로인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남성은 16일 새벽 1시5분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육군 22사단 경계 지역)으로 상륙했다. 군은 이 남성이 잠수복을 입고 6시간가량 헤엄쳐 월남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잠수복과 오리발을 상륙 지점에서 멀지 않은 바위 사이에 벗어놓은 뒤 남쪽을 향해 400m 정도 걸어 내려갔다. 이 과정에서 군의 근거리 감시 카메라 4대에 남성의 움직임이 다섯 차례나 포착됐다. 이 중 두 번은 경고음까지 울렸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다른 작업 중이던 영상 감시병이 오(誤)경보로 생각해 확인도 안 하고 알림창도 두 번 다 꺼버렸다”고 밝혔다. 이를 감독해야 할 장교가 바로 뒤에 있었는데도 부대와 전화 통화를 하느라 놓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욱 장관 “출퇴근 간부로 오인한 듯”

군의 1차 경계망을 뚫은 북한 남성은 이후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를 발견했다. 직경 90㎝, 길이 26m의 배수로 입구에는 녹슨 차단막이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결국 남성은 손쉽게 배수로를 기어서 통과해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헤엄귀순’ 당시 상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헤엄귀순’ 당시 상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군 당국은 관리 소홀을 인정했다. 지난해 7월 탈북민의 강화도 월북 사건 이후 전군이 배수로 일제점검을 했지만 해당 배수로는 관리 목록에 없었다. 합참 관계자는 “현장 조사 과정에서 그동안 관리하지 않았던 배수로 3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지역에는 높은 방벽이 있고, 배수로가 돌출돼 있지 않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며 “해안 쪽에는 미확인 지뢰가 있어 수색 정찰도 하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을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그곳에 미확인 지뢰 지역은 없다. 평소 해안을 열심히 순찰했더라면 배수로를 쉽게 찾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남성이 군의 감시장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배수로를 통과한 지 2시간20여분 뒤인 오전 4시12분쯤이다. 배수로에서 5㎞ 남쪽의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울타리에 설치된 CCTV에 남성이 1분 간격으로 세 차례 포착됐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고 위병소 근무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 차례 경계망을 허문 남성은 4시16분쯤 제진검문소 CCTV에 다시 두 차례 포착된다. 그제야 검문소 근무병이 “신원 미상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합참 관계자는 “해당 민통 소초에서 자체적으로 초동 조치에 나섰지만 신원 확보에 실패했다”며 “30여 분 뒤 사단장에게 보고한 뒤 수색·경계 단계를 격상하고, 6시35분쯤 ‘경계태세 1급’을 발령했다”고 밝혔다.

한겨울 6시간 수영 가능한지 의문

북한 남성은 16일 오전 7시27분쯤 검문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야산에서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낙엽을 덮고 자다가 발견됐다. 강풍이 부는 추운 날 여섯 시간 동안 수영해 탈북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합참 관계자는 “(이 남성이) 어업 관련 부업을 하고 바다에 익숙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시간 수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목과 신체가 분리되는 헐렁한 형태의 잠수복 안에 두꺼운 패딩과 양말을 착용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며 “미 해군 잠수 교본에 따르면 7도에서 다섯 시간 이상 바다 활동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는데, 당일 해수 온도가 6~8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군 자료에는 방수복을 입어도 해수 온도 8도에선 생존 가능 시간이 2시간15분, 6도에선 1시간45분에 불과하다고 나온다.

군 당국은 이 남성을 “귀순자로 추정하고 있으며 민간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정부 소식통은 “삼척항 목선 귀순사건 당시 북한 어민 모습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옷차림”이라며 “패딩과 잠수복·오리발 등이 북한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보인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철재·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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