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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인도군 양팔로 막았다…中 영웅 찬가에 26억명 열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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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인도군에 맞선 중국 병사의 사진에 ‘영웅본색’이란 제목을 붙이고 “가슴으로 적에 맞서고 등뒤로 조국을 지켰다. 한 명의 전사가 곧 국경 경계비석”이라고 설명한 CC-TV의 애국 선전 포스터. 인도군에 맞선 중국군 병사를 영웅으로 묘사했다. [CCTV 웨이보 캡처]

2020년 6월 인도군에 맞선 중국 병사의 사진에 ‘영웅본색’이란 제목을 붙이고 “가슴으로 적에 맞서고 등뒤로 조국을 지켰다. 한 명의 전사가 곧 국경 경계비석”이라고 설명한 CC-TV의 애국 선전 포스터. 인도군에 맞선 중국군 병사를 영웅으로 묘사했다. [CCTV 웨이보 캡처]

“내가 서 있는 곳이 중국이다. 생명을 다해 지키며 기다린다. 칼날 같은 바람도, 강철 같은 산맥도 두렵지 않다. 조국 산하 한 치도 빼앗길 수 없다.”

중국 서쪽 국경 수비부대가 애창한다는 군가를 지난 19일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가 1면 머리기사에서 소개했다. 지난해 6월 중국이 인도와 영토 분쟁 중인 라다크 지역의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충돌 당시 부상한 연대장 치파바오(祁發寶)와 숨진 대대장 천훙쥔(陳紅軍), 사병 천상룽(陳尙榕)·샤오쓰위안(肖思遠)· 왕차오란(王焯冉)에게 영웅 칭호를 추서하는 기사에서다.

인도군과 국경 충돌 희생자 8개월만에 공개 #‘영웅 만들기’에 외교부, 관영매체 총동원 #희생자 숫자 의문 표시한 네티즌 구류 처벌

중국중앙방송(CC-TV)은 군가의 마지막 구절 ‘한 치 영토도 잃을 수 없다(#祖國山河一寸不能丢#)’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해시태그(검색어)로 만들었다. 웨이보 해시태그는 중국의 최신 트렌드를 좌우하는 여론 풍향계 기능을 한다. 중국 네티즌은 열광했다. 웨이보 측이 공개한 클릭 수는 19일 4억3800만 건, 20일 14억9000만 건, 21일 6억1100만 건을 기록했다. 22일 오전까지 총 클릭 26억7000만 건을 기록 중이다. 댓글은 2191만 건을 기록 중이다. 몰려오는 인도군을 양팔로 막고 선 중국 병사의 사진은 중국 SNS에서 최고인기의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 됐다.

중국 CCTV가 19일 공개한 지난해 6월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중국·인도군 충돌 현장 모습 [CCTV 캡처]

중국 CCTV가 19일 공개한 지난해 6월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중국·인도군 충돌 현장 모습 [CCTV 캡처]

'애국 마케팅'에는 당국이 총동원됐다. 중국 국방부는 19일 충돌 현장이 담긴 8분 49초 분량의 영상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국방부와 외교부 대변인은 영웅 찬가를 불렀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영웅 병사의 사적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며 “천훙쥔은 당시 넉 달만 있으면 아버지가 될 예정이었고, 샤오쓰위안은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었으며, 18살의 청샹룽은 ‘투명한 사랑 오직 중국을 위해’라는 감동적인 일기를 남겼다”고 말했다. 관영 방송·신문·인터넷 등 모든 매체는 희생 장병의 영웅 만들기에 동참했다.

중국의 애국 마케팅은 8개월 전 인도의 대응과 판박이다. 인도는 당시 사건 직후 숨진 병사 20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례식 장면까지 공개했다. 7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돌연 국경 라다크 지역을 현지 시찰하고 현지 수비 부대원을 대상으로 강경한 어조의 연설을 남겼다.

8개월 시차를 두고 당시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선 ‘책임지는 대국의 기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화춘잉 대변인은 19일 “중국은 양국 관계와 양군 관계라는 대국(大局)을 수호하고, 상황을 진정시키고 완화하기 위해 극도의 자제를 유지하면서 책임지는 대국의 기상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21일 “중국은 중국·인도 관계와 국경사태, 여론 추이를 효과적으로 구분했다”며 “중국은 국경 문제를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국민 투표로 결정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지면서 국가 전략에 해당하는 핵심 의사 결정을 단순 여론에 따른다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는 해석이다. 둬웨이는 “당시 중국이 사후 공개를 결정하면서, 여론을 포퓰리즘이 아닌 애국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데, 비교적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뒤늦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처벌을 받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난징(南京) 공안국은 19일 열사를 폄훼했다는 죄목으로 유명 블로거 처우(仇) 씨를 체포했다. 국경 충돌 당시 더 많은 중국군이 사망했을 수 있다는 등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20일 베이징 공안국은 천(陳)모씨를 국경수호 영웅을 모욕했다는 죄목으로 구류 처분했다. 21일에는 쓰촨 몐양(綿陽)시 경찰이 ‘ZED’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영웅을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구류 7일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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