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터갓의 레슨 편지] 32세에 마라톤 입문

중앙일보

입력

내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때는 스물한살이었습니다. 엘리트 선수가 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요.

1990년 군(케냐 공군)에 입대해 훈련 도중 다른 병사들보다 잘 뛰었던 게 계기였습니다. 군인 육상대회에 출전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12㎞ 경기였지요. 뛰고 나서 얼마나 힘에 겨웠는지 어지럽고 침에 피가 섞여 나왔습니다. 순위도 25위였습니다. 그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그때부터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시간을 내 달렸지요. 달리면서 내 자신이 강해지고 있음을 몸으로, 정신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케냐 일반대회의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나가 12위를 했고, 1만m에서는 8위를 했지요. 그렇게 점점 성적이 좋아지더니 3년 만에 케냐 중장거리 최고의 선수가 됐습니다.

42.195㎞의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건 32세 때였습니다. 민간인이 된 뒤인 2001년 런던마라톤이었지요. 주변에서 "은퇴할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하다니"라면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있었어요. 하프마라톤 공인(59분17초).비공인(59분6초) 세계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라톤은 달랐어요. "도대체 이렇게 힘든 스포츠가 또 있을까."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요. 2위로 골인하긴 했지만 결승점을 지나고 나서 구토를 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년 뒤 2002년 런던마라톤에서는 2시간5분48초라는 기록을 냈지요. 또 1년 뒤 베를린마라톤에서는 세계기록을 바꿨습니다. '2시간 5분'의 벽을 깬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통이 우리 인간들을 더욱 강하고 용감하게 만든다고.

한국의 달리기 팬 여러분.

한국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출전한 동료들에게 한번에 수만명씩 참가하는 한국의 마라톤 열기를 듣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붉은 옷을 입은 한국사람들의 경이로운 거리 응원을 보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확인했지요.

제가 편지를 쓰는 것도 한국의 달리기 붐이 부럽고, 또 그런 열정적인 국민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기회가 되면 가까운 시기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고, 한국의 엘리트.마스터스 러너들과 함께 달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자, 오늘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지금부터 달리세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지금 바로 달리기를 시작하세요. 달리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야말로 더욱 달려야 합니다. 달리면(혹은 걸으면) 건강해지고 젊어집니다. 하지만 선수처럼 너무 무리하게 뛰지는 마세요. 시작은 몸에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입니다. 훈련을 통해 차츰 몸 상태를 바꿔가는 겁니다.

나는 직업으로 달립니다. 그래서 직업이 마라톤이 아니면서도 마라톤을 즐기는 마스터스 러너들을 존경합니다. 제가 좀더 빨리 달릴지는 몰라도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은퇴 후에는 저도 즐겁고 가볍게 뛰면서 건강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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