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배틀그라운드] 국방부·사령부·전후방 죄다 뚫렸다…軍 경계실패 잔혹사

중앙일보

입력 2021.02.21 06:00

업데이트 2021.02.21 09:39

“또 뚫렸다” 국방부 기자실이 술렁였다. 지난 16일 오전 전방 부대에 침투 작전에 대응하는 ‘진도개 하나’가 발령된 소식이 도착하면서다. 탄식은 이어졌다. 군 당국은 ‘헤엄 귀순’을 알지 못했고, 탈북자는 낙엽을 덮고 잠든 상태에서 발견됐다.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노크·숙박·헤엄 귀순’ 같은 부대
지난해는 국방부 침입도 못 막아
‘100㎞ 감시 어렵다’ 현실적 고충

강원도 고성지역 경계 작전을 책임진 육군 22사단에선 지난해 11월에도 군 철책을 넘어왔던 탈북자를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사흘 만에 발견해 ‘숙박 귀순’ 논란을 자초했다. 불과 석 달 만에 비슷한 사고를 반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노크귀순' 사건이 있던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부대를 방문해 전방 철책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노크귀순' 사건이 있던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부대를 방문해 전방 철책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22사단의 경계 실패는 요즘일 만은 아니다. 2012년엔 ‘노크 귀순’도 있었고, 2009년 10월엔 폭행혐의로 지명수배된 남자가 22사단이 관할하는 군사분계선 3중 철책을 뚫고 월북했다. 이처럼 잦은 경계 실패로 이 부대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징계를 받아 보직을 빼앗기거나 다음 진급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경계병 과오가 크다”면서 “과학화시스템은 보조수단이고 실체는 운용하는 사람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며 경계 실패를 인정했다.

그동안 휴전선이 뚫리거나 초병이 총기를 빼앗기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지난해는 국방부도 뚫렸다. 이쯤 되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사건 이후 대처를 보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미군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 ‘노크 귀순’ 질타, 달라진 건 없어

2008년 4월 경기도 파주 지역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군 장교는 한국군 경계초소(GP) 앞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경계병은 없었다. 백기를 흔들며 총을 7발이나 쐈지만 마찬가지였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자며 기다린 뒤 겨우 한국군 장병을 소리쳐 불러냈다.

‘호출 귀순’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상황은 더 심각했다. 2012년 10월 2일 휴전선을 지키는 군 장병 생활관(숙소)에 누군가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북한 병사는 전방초소(GOP) 철책을 뚫고 들어왔다. 이때도 22사단이다.

2019년 6월 강원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에 서 있는 상태로 삼척항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2019년 6월 강원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에 서 있는 상태로 삼척항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시절에 ‘노크 귀순’ 현장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며 질책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2019년 6월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에 도착할 때까지 군 당국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항구에 설치된 CCTV는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선이 방파제에 도착한 뒤에도 주민 신고를 접수하고서야 경계 실패를 발견했다.

1996년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 잠수정은 택시기사가 발견했고, 1998년에는 어민 신고를 받고 군이 출동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마찬가지다.

1996년 9월 새벽 강원도 강릉 해안도로를 달리던 택시기사는 해안가에 좌초된 북한 잠수정을 발견해 신고했다. [중앙포토]

1996년 9월 새벽 강원도 강릉 해안도로를 달리던 택시기사는 해안가에 좌초된 북한 잠수정을 발견해 신고했다. [중앙포토]

정부는 목선 사건 한 달 뒤 “해상 경계작전과 가용전력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주간ㆍ야간 감시 성능이 우수한 열상감시장비(TOD)를 효과적으로 운용하지 못해 해안감시에 공백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헤엄 귀순 사건에서도 해안에 접근하는 탈북자를 TOD 경계병이 발견하지 못했다. CCTV 감시병도 포착된 움직임을 놓쳤다.

‘북한 잠수정’ 택시기사 신고, 30년 지나도 같아

북에서만 내려오는 건 아니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는 인천 강화도 연미정 인근 철책선 아래 배수로를 통해 한강 하류로 빠져나간 뒤 헤엄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때 사건 이후 경계를 책임진 전군에서 배수로 점검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헤엄 귀순에서도 탈북자는 배수로를 통해 들어왔다.

2017년 11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병사를 구출하는 영열상감시체계(TOD) 영상 장면. TOD 영상 덕분에 주야간 언제라도 사람을 뚜렸하게 구분해 발견 할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

2017년 11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병사를 구출하는 영열상감시체계(TOD) 영상 장면. TOD 영상 덕분에 주야간 언제라도 사람을 뚜렸하게 구분해 발견 할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

국방부조차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4월 심야 시간에 벤츠 차량 한 대가 국방부 영내로 들어와 30분가량 배회했다. 국방부와 합참 등 주요 군 지휘 시설이 모여있고 미군 기지도 인접한 핵심 구역이다.

당시 국방부 경계를 책임진 군사경찰의 명백한 경계 실패다. 허가된 차량이 들어올 때 바짝 붙어 뒤따라 들어 오는 걸 막지 못했다. 이때 국방부 침입 사건은 작전부대 경계 실패를 사과했던 국방부 장관 발언 직후 일이다.

2019년 6월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북 소형 목선 관련 대국민사과문을 발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6월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북 소형 목선 관련 대국민사과문을 발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3월 수방사 방공진지 울타리 밑 땅을 파고 침입한 50대 남성은 1시간 뒤 발견됐다. 하루 뒤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경계작전에 소홀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더는 물러설 여지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했다.

장관이 직접 ‘절박한 심정’을 밝혔지만, 장관 사무실이 위치한 국방부에 대형 차량이 들어서는 것도 막지 못했다.

국방부·사령부·전후방 모두 다 뚫려

어쩌면 사령부 경계가 더 허술한 것 같다. 수방사 방공진지 침입에 앞서 같은 달 초에도 시위대 2명이 제주 해군기지 내부로 들어간 뒤 거의 2시간이 지나서야 대응이 이뤄졌다.

두 달 앞선 1월에는 70대 노인이 진해 해군기지 정문으로 유유히 들어가는 걸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부대를 배회하던 이 노인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발각됐다.

아군도 믿을 수 없다. 2019년 7월 해군 2함대에선 근무지를 이탈한 초소 경계병이 간첩으로 오인돼 부대에 소동이 일기도 했다. 초소 이탈에 따른 처벌이 두려워 허위 자백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해 논란이 더 커지기도 했다.

해병대 장병이 해안 순찰을 하고 있다. [뉴스1]

해병대 장병이 해안 순찰을 하고 있다. [뉴스1]

해병대 사단 본부도 뚫렸다. 2015년 2월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선 민간인 차량이 부대를 휘젓고 다녔다. 초소 장병의 제지를 무시하고 진입했다. 부대는 수색에 나섰지만 10여분 뒤 운전자 스스로 위병소에 나타날 때까지 찾지 못했다.

무기 탈취 사건도 빈번했다. 2001년 7월 전북 신병교육대 무기고에서 소총 두 정이 도난됐다. 2010년 4월엔 경기도 연천 군부대 사격장에서 훔친 실탄과 공포탄을 유통하던 판매책이 3년 만에 검거됐다.

군 장병 스스로 무기를 내준 사건도 있다. 1997년 1월 육군 51사단 해안초소에 육군 소령을 자칭한 40대 남자가 접근했다. “군단 백 소령이다” 이 한 마디에 현황을 브리핑한 뒤 소총 1정과 실탄 30발을 빌려줬다.

믿었던 해병대도 경계 실패, 미군도?

미군에서도 경계 실패가 발생한다. 2017년 6월 첨단 이지스 구축함인 피츠제럴드함이 일본 남쪽 해상에서 필리핀 선적 대형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해 7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이때 함장도 다쳤던 대형 사고는 미군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두 달 뒤에도 이지스함인 매케인함이 싱가포르 동쪽 해상에서 라이베리아 선적의 유조선과 충돌해 수병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2017년 6월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호가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해 손상된 모습. [연합뉴스]

2017년 6월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호가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해 손상된 모습. [연합뉴스]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아내는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이지스함이 바로 코앞에 대형 선박을 피하지 못했던 사고다. 당직사관의 경계 부주의로 충돌사고가 났다는 결론이다.

앞서 같은 해 5월 동해 울릉도 남방 해상에서 훈련 중이던 레이크챔플레인함도 통발어선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때 미 해군은 6개월 넘는 조사 끝에 보고서를 냈다. “훈련 부족과 지휘 부재가 원인이었으며, 제대로 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결론을 냈다.

미 해군은 7함대에 구축함과 병력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미 본토 해안경비대 소속 함정을 파견하는 등 해군의 과로를 줄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여기서 미군과 한국군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건의 파문을 줄이거나 경계 작전 문제에만 초점을 둬 당면한 비난을 모면하려는 한국군과 달리 미군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가도록 지킨다?’

경계 태만은 징계를 피할 수 없다. 꼼꼼한 검열과 무거운 처벌로 교훈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장 부대 장병에게만 책임을 돌리기엔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육군 초등조치부대원이 해안에서 수색·경계 훈련을 하는 모습. [육군]

육군 초등조치부대원이 해안에서 수색·경계 훈련을 하는 모습. [육군]

전방을 경계하는 육군은 1개 사단이 평균 25㎞ 경계를 책임진다. 이번 헤엄 귀순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은 4배나 긴 경계선을 책임진다. 철책만 지상 GOP 선상 30㎞, 해안 70㎞ 등 총 100㎞에 이른다. 직선거리로 서울에서 천안까지 수준이다.

지난해 배수로 월북 사건이 터졌던 해병대 2사단의 경우도 적게는 100㎞ 많게는 250㎞ 길이의 경계선 책임을 진다. 이 구역은 휴전선 부대 중 유일하게 육군이 아닌 해병대가 맡는다.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가도록 지킨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라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임무를 적은 병력에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전방 부대는 북한군 공격을 막아 내고 전투를 벌여야 할 부대인데 ‘24시간 경비’에 동원돼 정작 중요한 전투 준비에 신경 쓸 틈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서욱 국방부 장관과 박정환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욱 국방부 장관과 박정환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해군과 공군 및 후방 지역 대규모 군 기지는 면적은 넓지만 주둔하는 병력은 매우 적다. 앞으로 인구 감소에 따라 병력이 크게 줄면 경계 작전에 투입하기 더 어려워진다.

미군은 기지 외곽 경비를 민간 군사 기업(PMC)에 맡긴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을 추진하면서 ‘상비병력 감축에 따른 민간인력(제초 제설 등) 활용’ 방안을 확대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을 더 확대해야 한다.

지난 17일 서 장관은 “현장에서 경계 작전 병력의 집중과 그를 지휘하는 저를 비롯한 수뇌부의 통합된 노력이 부족했다”며 “22사단에 대한 정밀진단을 이번 기회에 해보겠다”고 했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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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다가 놓쳤다’는 경계 작전 실패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 또한, 전투병을 경비원으로 활용하면 적만 이롭게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취객 대응하다 강력 사건 현장에 출동 못 하는 경찰의 고충과 다름없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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