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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이어 김봉진도…벤처家의 남다른 '기부 DNA'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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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아내 설보미씨. 우아한형제들은 18일 김 의장이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아내 설보미씨. 우아한형제들은 18일 김 의장이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사진 우아한형제들

“이 기부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중략) 제가 꾸었던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도전하는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주시길 바랍니다.”

국내 최대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18일 세계 부호들의 기부 클럽인 ‘더 기빙 플레지’의 서약서에서 이렇게 썼다. ‘기빙 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재산 사회환원을 약속하면서 시작된 자발적 기부 운동이다. 재산의 절반 이상(최소 약 55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이들이 모였다.

기빙 플레지의 기부 서약자로 인정받으려면 재산 형성 과정 실사와 심층 인터뷰, 평판 조회 등 까다로운 자격 심사를 거쳐야 한다. 현재 24개국, 218명(공동명의는 1명)이 클럽에 가입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CEO 앨런 머스크,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회장,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이 있다. 한국인은 김 의장이 최초다.

벤처사업가의 남다른 기부 DNA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김 의장에 앞서 김범수(55)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면서 5조원 기부 계획을 내놨다. 이후 김봉진 의장의 ‘통 큰 기부’가 이어지면서 벤처 기업가들의 남다른 DNA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는 어린이 전문병원 건립에 사재 100억원을 포함해 최근 200억원을 쾌척했다. 김택진 대표가 이끄는 엔씨소프트는 비영리 재단인 NC문화재단을 통해 평균 세전 이익의 1%를 기부한다. 지난해(1~3분기 누적) 기부금만 151억원으로 업계 최대 규모다.

국내 대기업들도 매년 재난 및 구호자금 명목으로 수백억원씩을 내놓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로 매년 수백억원씩을 기탁하지만 정부 눈치를 보며 내는 '준조세' 성격이 강하다며 내는 기업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탐탁치 않아 한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기업의 비자발적 기부금은 4291억원이던 2009년부터 매년 늘어 2019년 총 6557억원이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내는 돈은 해마다 늘고 있다"며 "하지만 기업인 개인의 사재 출연과 기업 차원의 지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업가의 기부에 박수쳐 줘야

그렇다면 대기업 오너보다 벤처 기업가가 기부에 더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우선 세대 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들은 창업 1세대부터 당시 어려운 국가 경제에 기부를 강요당하다시피 했지만, 벤처기업의 주축인 밀레니얼 세대는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기부 문화를 싹틔웠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 기업가들의 기부는 지속가능성이 화두인 자본주의 4.0 시대에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 무의식중에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미국에 일찌감치 기부 문화가 정착된 것도 자본주의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간 기부에 대한 국내 여건이 미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중은 2013년 0.83%(명목 GDP 기준)에서 2018년 0.73%로 줄었다. 미국(2.08%)의 3분의 1 수준이다. 기부 참여율(최근 1년간 기부 경험)은 2011년 36.4%에서 지난해 25.6%로 하락했다. 캐나다(82%)와 영국(67%) 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세법 개정으로 인해 기부금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려면 현행 세액공제방식을 재검토하고 개인이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이날 서약서에서 “기부 문화를 저해하는 인식적, 제도적 문제들을 개선하는데도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국내에선 여전히 누가 기부했다고 하면 칭찬보다는 ‘돈이 많구나’ 비꼬는 분위기가 짙은 편”이라며 “성공한 기업가에겐 박수를 보내고 이들은 또 기부로 박수에 보답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비즈니스 히어로이즘(business heroism)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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