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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상’ 논란 와중에…할아버지 조국서 병원비 걱정하는 4대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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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천 연수구 나사렛 병원에 입원 중인 초이 일리야. [문영숙 이사장]

인천 연수구 나사렛 병원에 입원 중인 초이 일리야. [문영숙 이사장]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왔어요.”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 이사장에게 지난 15일 오전 3시쯤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갑작스러운 전화를 전 사람은 초이 일리야(19)였다. 한국에 유학 중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860~1920)의 현손(玄孫·4대손)이다. 초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초이 일리야는 인천대학교 글로벌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2019년 가을부터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날 새벽 초이 일리야는 복통이 계속되자 여권만 챙겨 집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배가 너무 아프다”는 호소에 편의점 직원이 119를 불렀다. 초이 일리야는 구급차를 타고 인천 연수구 나사렛국제병원으로 향했다. 정밀 검사를 위해선 보호자가 필요했다. 다행히 문 이사장과 연락이 닿았고 컴퓨터단층촬영(CT)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복통의 원인은 요로가 막혀 신장이 붓는 수신증이었다.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복통이 왔다. 결석은 아니었지만, 요관이 막힌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입원해야 했다. 문 이사장은 “한국말이 능숙지 않은 일리야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뺐다”며 “러시아에 있는 일리야 어머니도 놀라시더니 연신 잘 부탁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입원치료를 받은 초이 일리야는 증세가 나아진 상태다.

위기는 넘겼지만, 병원비가 문제였다. 초이 일리야는 러시아 국적이라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해 기념사업회에서 가입한 실비보험이 있지만, 외국인이라 의료보험보다 보상액이 적다. 병원에서 “선천적으로 요관이 좁아 신장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부담은 더 늘었다. 초이 일리야는 18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으로 옮겨 요관 확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최재형상 논란 뒤 일리야 입원

국내 입국을 앞두고 초이 일리야가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영숙 이사장]

국내 입국을 앞두고 초이 일리야가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영숙 이사장]

문 이사장에겐 공교롭게도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다. 매년 ‘최재형상’을 주고 있는 최재형기념사업회는 같은 명칭의 상을 만든 광복회와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3일 문 이사장은 서울 용산구 사업회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복회) 김원웅 회장은 최재형상을 세 차례나 남발해 사업회에서 만든 기존 최재형상의 권위와 위상을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명과 사과를 촉구했으나 김 회장은 사업회를 무시하고 설상가상으로 친일 프레임까지 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광복회는 지난달 25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최재형상을 시상했다. 이에 문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최재형 선생도 당신 이름을 딴 상을 추 전 장관이 받는 걸 좋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문 이사장은 17일 “광복회에서 최재형상을 계속 주겠다고 주장해서 속상했는데 초이 일리야까지 입원하게 돼 혼란스럽다”면서 “입원비와 수술비를 합쳐 수백만 원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이다. 후원자들 덕분에 간신히 버텨왔는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다.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모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 연설 도중 안중근 의사 등과 함께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축적한 부로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힘썼다. 그는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순국했다. 유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다. 후손들 대부분의 국적은 러시아다. 대한민국 정부는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초이 일리야는 최재형 선생 손자(인노켄티)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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