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가는 최재형 4대손···할아버지 조국서 첫 설 맞는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24 05:00

업데이트 2020.01.24 20:01

초이 일리야(왼쪽)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은 후원 문의가 들어왔다. 지난 14일에도 초이 일리야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나왔다. [사진 문영숙 이사장]

초이 일리야(왼쪽)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은 후원 문의가 들어왔다. 지난 14일에도 초이 일리야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이 나왔다. [사진 문영숙 이사장]

“나 공부해요. 나 책 잘 읽어요.”

한국어를 잘 배우고 있느냐고 묻자 초이 일리야(18)는 미소를 짓더니 어눌한 목소리로 책을 한줄씩 읽어 내려갔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들어온 지 어언 4개월. 한국어로 기본적인 의사 표현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룸메이트와 지하철로 부평역까지 다닐 정도로 한국 문화에도 익숙해졌다고 한다.

초이 일리야는 독립 운동가 최재형 선생(1860~1920)의 현손(玄孫·4대손)이다. 러시아서 나고 자랐지만, 최재형 선생의 활약상은 익히 알고 있다. 할머니로부터 ‘(최재형 선생이) 한인들을 위한 소학교를 세우고 독립투사단도 조직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모스크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러시아 소재의 한 대학 공학 계열에 합격했다. 그러나 인천대로부터 글로벌 어학원 입학을 제안받고 한국행을 택했고 지난해 9월부터 1년 동안 한국어 강의를 듣고 있다.

청와대 방문 기회 얻어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초이 일리야. [사진 문영숙 이사장]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초이 일리야. [사진 문영숙 이사장]

이번 설날은 초이 일리야가 한국에서 홀로 맞는 첫 명절이다. 지난해 추석에는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41)와 함께 경복궁, 남산, 용산 전쟁기념관, 국립 서울현충원 등을 방문했다.

지난주 문영숙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청와대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초이 일리야에게 설날 연휴 기간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문 이사장은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최재형 선생과 초이 일리야에 대해 설명하면서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최재형 선생의 후손이 설날에 청와대를 돌아볼 수 있다면 순국선열의 뜻이 헛되지 않고 후대까지 기억되는 일이라는 것을 초이 일리야도 알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 해의 설날을 맞아 초이 일리야에게 떡국 등 설날 문화 체험 외에 뜻깊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이 초이 일리야를 초청하면서 이달 28일 청와대를 방문하게 됐다.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서 애국가 제창

초이 일리야는 지난해 11월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따라 불렀다. [KTV 캡처]

초이 일리야는 지난해 11월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따라 불렀다. [KTV 캡처]

초이 일리야는 지난해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국가 보훈처 관계자는 “독립 운동가 후손 가운데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를 만한 적임자를 찾던 중 초이 일리야를 알게 돼 애국가 제창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독립운동가 강수원 선생의 손녀 뮤지컬 배우 강신혜(34)씨가 초이 일리야와 함께 애국가를 선도 제창하며 기념식을 장식했다.

기념사업회는 초이 일리야가 올해 4월 7일에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리는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기 기념식에서 한국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그동안 기념식에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참석했지만, 한국어로 기념사를 했던 이는 없었다”며 “선생의 후손이 순국 100주년 기념식에 한국어로 기념사를 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일대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다.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 연설 도중 안중근 의사 등과 함께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축적한 부를 토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4월 순국했고 유가족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사후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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