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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생물에 해로워요"···우유 빨대 없앤 초등생의 착한 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매일유업 본사에 도착한 초등학생의 편지 일부. 사진 매일유업

매일유업 본사에 도착한 초등학생의 편지 일부. 사진 매일유업

기업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애쓴다. 더 나은 성능, 더 멋진 디자인, 더 합리적인 가격…. 이제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환경에 더 친화적일 것.
과거 소비자들이 품질과 서비스 불만을 제기했다면, 최근엔 환경 운동가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환경오염 요인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등 기업을 바꾸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만 서명운동에 독일본사 수용

브리타코리아의 재활용 프로그램 시행 소식을 알린 게시(왼쪽)와 폐필터가 수집된 모습. 사진 '알맹상점'

브리타코리아의 재활용 프로그램 시행 소식을 알린 게시(왼쪽)와 폐필터가 수집된 모습. 사진 '알맹상점'

대표적인 게 정수기 업체인 브리타코리아다. 독일 기업인 브리타는 90년대부터 유럽에서 필터를 회사가 직접 수거해 재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갈아야하는 정수기 필터는 플라스틱 안에 활성탄과 이온교환수지가 들어있는 형태라 버려지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지사는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면 된다’면서 폐필터 수거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에 십년후연구소, 알맹상점 등을 주축으로 한 소비자들은 ‘브리타 어택(항의·요구) 캠페인’에 나섰다. 이들은 폐필터 수거 거점과 재활용 필터를 만들어 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1만4545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해 12월 브리타코리아 측에 정식 답변을 요구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결국 브리타코리아는 “2021년부터 필터 수거 재활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충전재를 환경에 유해하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이주은 알맹상점 공동대표는 “미국 브리타도 재활용 프로그램이 없다가 서명 운동을 해서 바뀐 사례”라며 “우리도 요구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는데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다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행하겠다는 안이 나오지 않아 상반기 중 전국에서 모인 폐필터 1500여개를 들고 브리타코리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란 스팸 뚜껑이 사라졌다

CJ제일제당의 뚜껑 없는 스팸 선물세트. 사진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의 뚜껑 없는 스팸 선물세트. 사진 CJ제일제당

국내 기업들도 ‘친환경 소비자’들의 의견에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당장 CJ제일제당은 올 설에 ‘뚜껑 없는 스팸’ 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지난해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이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진행한 결과다. 스팸의 상징과도 같은 노란 플라스틱 뚜껑이 이미 개봉한 제품의 밀봉에 큰 효과가 없으니, 남은 스팸은 따로 보관하는 게 좋다는 제조사의 조언이 근거가 됐다.
쓰담쓰담은 ‘그럼 뚜껑은 사실상 필요없는 쓰레기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고, CJ제일제당은 올해 추석까지 모든 스팸 선물세트에서 뚜껑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은 초등학생들이 보내온 편지와 빨대(왼쪽)를 계기로 빨대 없는 상하목장 우유를 만들었다. 사진 매일유업

매일유업은 초등학생들이 보내온 편지와 빨대(왼쪽)를 계기로 빨대 없는 상하목장 우유를 만들었다. 사진 매일유업

최근 거세게 부는 ‘플라스틱 아웃’ 상품의 배경엔 대부분 소비자들의 항의가 있다. 지난해 11월 매일유업엔 자사 제품에서 뜯어낸 빨대 200개와 손 편지 29통이 담긴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전남 영광 중앙초등학교 6학년 2반 학생들이 쓴 이 편지엔 “빨대는 바다 생물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음료수에 빨대가 있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빨대가 붙어있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회사는 즉각 빨대를 없애기로 결정했고, 지난달 빨대를 없앤 상하목장 유기농 멸균우유를 출시했다.

‘친환경’ 고객은 옳다 

롯데마트 역시 소비자 반응을 토대로 올해 상반기까지 자체브랜드(PB) 생수 전체를 라벨 없는 생수로 바꿀 예정이다. 그 첫 단계로 지난달 말 ‘초이스엘 세이브 워터 에코(ECO)’를 출시했다.
이효재 롯데마트 식품PB개발팀 상품기획자는 “지난해 롯데칠성음료에서 출시한 무(無)라벨 ‘아이시스 ECO’ 생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라벨이 없어 재구매하겠다’고 해 친환경 니즈가 얼마나 강력한지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 라벨 없는 아이시스는 1000만개 이상이 팔렸다.

롯데마트의 라벨을 없앤 '초이스엘 세이브워터 에코' 생수(왼쪽)와 이마트가 확대하고 있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 사진 각 업체

롯데마트의 라벨을 없앤 '초이스엘 세이브워터 에코' 생수(왼쪽)와 이마트가 확대하고 있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 사진 각 업체

이마트가 업계 최초로 선 보인 ‘세제 리필 자판기’도 ‘고객의 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비자들은 세제를 다 쓸 때마다 멀쩡한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는 게 환경에 좋지 않다며 ‘용기만 있으면 내용물을 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회사는 이마트 성수점과 트레이더스 안성점에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해서 쓸 수 있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이달 말까지 왕십리·은평·죽전·영등포점과 트레이더스 수원·송림점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카페와 소셜미디어(SNS)를 구심점으로 소비자들의 친환경 외침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며 “이들의 의견에 적극 응답할 경우, 기업의 자발적 친환경 행보에 소통하는 기업으로서 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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