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얼음 공주 녹인 왕자의 불꽃 사랑과 하녀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2021.02.11 08:00

[더,오래]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44) 

요즘 핫한 김호중 앨범의 첫 곡인 ‘아무도 잠들지 말라’로 유명한 푸치니의 ‘투란도트’(1926년 발표)는 위대한 대작이지만, 최종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푸치니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이며 장대한 선율을 이어가면서, 영웅적이고 드라마틱한 인물인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를 앞에 내세웠습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냉혹한 공주를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내며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지지요.

아울러 시녀 ‘류’를 가슴 뭉클하게 그려냅니다. 공주와 왕자의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사랑은 모든 비밀을 품고 죽어간 ‘류’의 희생으로 더욱 아련해진답니다. 게다가 이름 자체도 웃음을 주면서 매우 중국적인 선율을 노래하는 핑, 팡, 퐁 3대신을 통해 이탈리아식 희극을 오페라에 잘 녹여냄으로써 오페라 주요 요소의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비로소 푸치니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대작을 창조해냈지요.

공주의 미모에 죽음을 건 도전을 하는 칼라프 왕자. [사진 Flickr]

공주의 미모에 죽음을 건 도전을 하는 칼라프 왕자. [사진 Flickr]

막이 오르면 광장에 군중이 모여있고, 투란도트 공주가 냉정하게 사형을 집행합니다. 투란토드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이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며 실패하면 목을 내놓아야 하는데, 도전에 실패한 페르시아 왕자의 목이 잘려나갔답니다. 모두 공주를 두려워하는데, 타타르 왕자 칼라프는 오히려 그녀의 미모에 반해 수수께끼에 도전하려 하네요.

나라가 망해 유랑하던 그의 아버지 티무르도 만류하고, 시녀 류도 아름다운 서정 아리아 ‘들어주세요, 왕자님’을 부르며 목숨을 지키라고 호소합니다. 이국땅 길바닥에서 모두 죽을 것이라며 눈물도 흘리지요. 허나, 한번 눈꺼풀에 사랑의 막이 씌면 아비나 어미의 호소와 만류가 뭔 소용이던가요? 왕자는 류에게 자신이 죽게 되면 아버지를 부탁한다며 도전의 징을 울립니다.

웅장한 합창과 함께 등장한 중국 황제도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죽는 것이 안타까워 도전을 단념시키려 합니다. 허나 칼라프는 미동도 하지 않지요. 투란도트 공주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부르는데, 내용은 옛날에 이 궁전에서 로링이라는 공주가 타타르 군대의 병사들에게 능욕당하고 죽었기에, 그 원한을 달래려 이방인에게 복수하는 것이라네요. 공주와 칼라프가 함께 “수수께끼는 셋, 목숨은 하나”라며 외치고 도전이 시작됩니다.

결국, 왕자가 수수께끼를 모두 풀자 음악이 힘차게 울리고 군중은 합창으로 황제와 승리자의 영광을 칭송합니다. 허나 공주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칼라프를 째려보며, 순결한 처녀를 낯선 사내와 결혼시키지 마시라고 황제에게 애원합니다. 어차피 공주가 수수께끼를 내건 목적은 복수뿐, 결혼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칼라프에게도 자신이 원치 않는데도 강제로 취하려 하느냐고 힐난하고요. 그러나 황제는 약속을 신성한 것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단언하지요. 군중은 더욱 환호합니다.

자신감에 마음이 업된 칼라프는 차가운 공주가 아니라 뜨거운 사랑을 원한다며 생뚱맞게도 자기가 역제안을 하는 게 아닙니까? 본인의 이름을 다음 날 아침까지 공주가 맞히면 목을 내놓을 것이되, 맞히지 못한다면 공주가 자신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요. 변방에서 온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겠지요. 투란도트는 얼씨구나 하고 제안에 동의하며 막이 내려집니다.

아마도 칼라프는 10대 또는 20대 초반의 혈기방장한 사내였음이 분명하지요. 조금만 세상을 더 살았더라도 다 이긴 게임을 이런 무모한 제안을 함으로써 원점으로 돌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허나 푸치니는 게임에 이겨 차가운 공주를 차지하는 지극히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사랑 이상의 참사랑을 찾는 여정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거랍니다.

깊은 밤,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면 모두 죽음에 처할 것이라는 공주의 명령이 선포되고, 두려움에 떠는 민중의 비장한 합창이 흐릅니다. 공주도 초조한 나머지 불 켜진 창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에 칼라프는 카리스마를 뽐내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부르며,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 하답니다.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하녀 류를 고문하지만, 결코 입을 열지 않지요. 공주는 왜 고통스러운 고문에도 이름을 말하지 않느냐고 묻고, 류는 그것은 ‘사랑’이며 주인님을 위해 드리는 선물 같은 것이기에 고문도 달콤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서 그녀는 비밀을 지키고자 자신을 찔러 숨을 거둡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자결한 그녀의 희생에 공주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 장면까지가 푸치니의 마지막 작곡 부분이랍니다.

웅장한 무대장치를 한 오페라 '투란도트'. [사진 Flickr]

웅장한 무대장치를 한 오페라 '투란도트'. [사진 Flickr]

푸치니의 후배 알파노가 작곡한 이후 부분에서, 칼라프는 공주의 베일을 벗기고 뜨거운 키스를 하는데 이제 더는 공주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얼음공주 투란도트가 드디어 참사랑을 깨달은 것이지요. 칼라프의 열정적인 사랑 고백에 키스를 받은 공주는 눈물을 흘리고요. 공주는 울며 “이제 나의 영광은 끝났다”고 하지만, 칼라프는 “이제 우리의 영광이 시작된다”고 응대합니다. 투란도트의 새로운 인생이 첫 키스와 첫 눈물로부터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침이 밝았습니다. 황제와 수많은 군중이 있는 성 앞에서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 발표하고, 웅장한 피날레 음악과 합창 속에 두 사람이 포옹하며 막이 내려집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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