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단감염 터진 영생교, 과거엔 신도 살해·암매장 악명 떨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기 부천시 승리제단 건물. 연합뉴스

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기 부천시 승리제단 건물. 연합뉴스

영생교 승리제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에 사과했다.

승리제단은 10일 홈페이지에 신도회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제단 기숙사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여 국민 여러분과 방역에 수고하시는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된 점 대단히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신도회에서는 방역당국의 자가격리 및 확산 방지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빠른 시일 내에 더 이상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승리제단 홈페이지 캡처

승리제단 홈페이지 캡처

승리제단 “집단감염 대단히 죄송” 

9일 부천시는 괴안동에 있는 영생교 승리제단 시설과 오정동의 보습학원에서 5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승리제단 남자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보습학원에서 근무한 강사 A씨가 가장 먼저 증상을 보였다. 그는 8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학원에서는 A씨의 제자였던 초등학생 B군이 6일 증상을 보인 뒤 7일 처음으로 확진됐다. 부천시 관계자는 “B군이 먼저 확진됐지만 증상 발현이 앞섰던 A씨를 지표환자(최초 환자)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시 발생한 종교시설 집단감염으로 ‘승리제단’이라는 종교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생교로도 불리는 승리제단은 1981년 교주 조희성이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했다.

신앙의 대상은 ‘이기신 하나님’, 즉 조희성이다 . 기독교 세계관에서 출발했으나 예수를 부정한다. 홈페이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분”이라고 조희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희성 선생은 그 죄를 완전히 이기고 하나님(부처님)이 되었다. 하나님(부처님)이 되었다는 것은 영생을 이루었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구세주 조희성님이 태어나신 날’이라며 매해 8월 12일을 ‘성탄절’로 부르며 기념하기도 한다.

교주=하나님…조희성 태어난 날이 성탄절

이들은 “죽지 않는 영생 안에 진리가 있고 영생을 구현하는 것이 종교”라며 “예수 믿다가 죽으면 영혼이 천당간다는 말이 사람들을 속이는 사이비종교가들의 소리”라고 주장한다.

‘승리제단’은 한국사회를 뒤흔든 끔찍한 사건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배교자(背敎者)를 감금·폭행·살해하고 암매장하는 등 끔찍한 강력 사건이 교단 내에서 발생한 것이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가장 먼저 언론에 등장한 건 교수 납치·감금 사건이다. 약 7년간 신도였던 교수가 교파를 탈퇴한 뒤 납치돼 폭행·감금당한 사건이다. 이 교수는 신도들로부터 “다른 교회에서 묻어온 때를 벗겨주겠다”며 온몸을 구타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1989년 5월 29일자 중앙일보에 ‘경북대교수 19일간 피랍감금/특정교회 교파다툼…부천서 탈출 신고’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이들은 범죄 혐의를 받는 교주를 연행하려는 경찰을 집단폭행하기도 했다. 1992년 9월 29일에 보도된 사건이다. 당시 조희성은 종말론을 주장하며 거액의 헌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경찰 3명은 잠복근무 중 조 교주를 목격하고 임의동행하려 했으나, 신도 50여 명에게 폭행당하고 승리제단 본부에 감금됐다 풀려났다.

이로 인해 조희성은 1994년 구속됐다. 신도 3명에게 헌금 명목으로 3억 5000만원을 받아 가로채고, 경찰관을 폭행하도록 신도들에게 지시한 혐의 등이 적용됐다.

2003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는 조희성. 중앙포토

2003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는 조희성. 중앙포토

법정 선 조희성 “나를 구속하면 나라 망해”

그해 8월 열린 조희성의 재판은 그의 황당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법정에서조차 자신이 구세주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나를 구속했기 때문에 올해는 사상 유례없는 가뭄이 찾아왔다. 가뭄을 막아보려고 해도 구속된 상태라서 막을 수 없다”, “나를 1년 이상 계속 구속하면 이 나라가 망한다”는 등 황당한 말을 쏟아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조희성은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확정받았다.

헌금 강요 사건이 진행되는 중 영생교가 전 신도를 감금하고 살해해 암매장했다는 또다른 의혹이 일었다. 이른바 ‘영생교 신도 살인 사건’이다. 사건은 행방불명된 신도가 살해됐다는 가족의 진정, 교단이 이탈자를 납치 감금했다는 제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사를 통해 1990~92년 영생교 신도였던 지모(당시 35세)씨 등 6명이 같은 신도들에게 납치·살해돼 암매장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검찰은 사건의 주범과 함께 조희성에게도 살해를 지시한 혐의(살인교사 등)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1심은 조희성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2심은 범인도피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살인을 주도한 신도가 교주와 교단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독단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조희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결국 대법원으로 가게 되었으나, 2심 선고 한 달 만에 조희성은 서울구치소에서 돌연 사망했다. 2004년 6월이었다. 당시 법무부는“조씨가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곤란을 호소해 인근 안양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다음날 오전 5시쯤 심근경색증 등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영생론’을 설파한 교주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나, 승리제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등에는 여전히 조희성이 죽지 않았다며, 그를 만났다는 간증이 이어지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