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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미얀마 대응 보면, 대북정책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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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에 첫 도전장을 던진 건 뜻밖에도 미얀마였다. 미얀마 쿠데타 사태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바이든식 외교에 정면으로 반할 경우 어떤 페널티가 주어질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또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미얀마, 롤모델서 불량국가로 전락 #중국과 밀착 우려, 미국 대응 고민

◆제재 효용성 재확인 계기 되나=미얀마는 2011년 문민정부 출범 후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제재 완화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2016년엔 대부분의 경제 제재가 해제됐다. 이는 2018~2019년 북·미 협상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에 제시한 ‘밝은 미래’의 실사판이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2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미얀마 모델을 따르라”고 공개 주문하기도 했다.

당장 미국은 ‘제재 해제’를 거둬들이겠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미국은 민주주의 발전을 기반으로 미얀마 제재를 해제해 왔는데 이를 뒤집는다면 제재를 재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카드는 ‘독자 제재’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중국·러시아 등의 반대로 쉽지 않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미얀마 군부 고위 인사 등에 대한 표적 제재 등 상징적 제재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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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를 풀어줬다가 다시 제재를 재검토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향후 북·미 협상 과정에서 대북제재 해제에 더욱 보수적일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더라도 제재 완화에 소극적이거나 최소한 스냅백 조항(비핵화 불이행 시 자동 복원)을 마련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있단 얘기다.

◆오바마는 ‘햄릿’, 바이든은?=바이든 입장에서 미얀마 쿠데타는 민주화와 개혁·개방으로 교화됐던 ‘모범 국가’가 다시 ‘불량 국가’로 전락한 안 좋은 사례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압박에 나서기 전 중국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군부가 중국과 더욱 밀착할 경우 반사이익이 중국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재하더라도 미얀마 군부가 중국을 뒷배로 삼아 버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상투적으로 써왔던 방식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얀마 군부든, 북한 김정은 정권이든 미·중 경쟁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바이든 입장에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출범 후 첫 아시아 정책의 시험대일 뿐만 아니라 오바마식 ‘햄릿 외교’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여론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소극적 대응으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당시 부통령으로서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단호하게 행동한다는 원칙을 국제사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이든 팀은 과거 오바마가 외교정책에 있어 ‘말만 앞선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걸 잘 안다”며 “동맹국의 동참 등 적극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민주화된 ‘국민’이 변수=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얀마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향후 대북정책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얀마와 북한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미얀마와 북한의 국내정치 지형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체제 안정성이다. 김 교수는 “북한과 달리 미얀마 체제는 상당히 불안정하다”며 “북한과 달리 미얀마에선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저항의 열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이 독재자들을 끌어내렸듯이 미얀마의 민심도 군부 정권을 물러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10년간의 개혁·개방을 통해 시민들이 민주주의 의식을 갖춘 미얀마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폐쇄국가인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은 다를 수 있다. 다만 ‘군부 집권→개혁·개방→쿠데타→항의 시위’라는 미얀마의 역사를 통해 미국은 북한이 향후 정상 국가의 길을 걷게 될 경우 맞닥뜨릴 과제들을 미리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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