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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술 빚어 제대로 노는 문화 만들 것"…술 빚는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정회철 대표

정회철 대표

"좋은 우리 술을 만들어 제대로 놀 수 있는 문화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술을 빚어 제대로 노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8년째 전통주 제조에 매달리고 있는 전통주 업체 예술의 정회철(59ㆍ사진) 대표가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6일 만난 정 대표는 "제대로 놀도록 돕는 게 나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길은 노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로스쿨 교수 접고 전통주 빚는 정회철 대표

변호사→스타강사→교수 접고 전통주 빚어   

강원도 홍천에 터 잡고 김 대표가 전통주 빚기에 매달린 것은 2012년부터다. 그는 이전까지는 변호사로 일했다. 서울대 법과대학(81학번)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당하고 1994년에 재입학, 9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판사 임용에 도전했지만 불합격했다. 정 대표는 "아무래도 학생 운동 전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회상했다. 연수원을 수료한 뒤에는 아는 선배의 로펌에 취업했다. 하지만 이내 '내게 맞는 일인가' 싶어 변호사도 그만뒀다.

김 대표는 변호사를 그만둔 뒤 서울 신림동 고시 수험가에 진출해 스타강사가 됐다. 사법시험이 끝난 다음 짬짬이 썼던 헌법 수험서가 인기를 끈 덕분이다. 요즘 말로 소위 ‘헌법 1타 강사’였던 셈이다. 정 대표는 학원가에서 ‘헌법의 정석’으로 불렸고, "제법 돈도 벌었었다"고 한다. 그는 스타강사로 알려지자 2008년엔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 교수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그는 헌법 교수로 강단에 섰지만 3년 만에 내려왔다. 대학의 바람대로 ‘신림동 스타일’로 매시간 쪽지 시험을 보고 학생들을 채근하며 강의에 몰두하다 건강을 잃은 것이다.

술 익는 소리 듣고 전통주에 매료돼  

배꽃필무렵

배꽃필무렵

전통주에 눈을 뜬 건 2006년 무렵이다. 우연히 인터넷으로 본 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기사에 나온 대로 막걸리를 따라 빚었다. 그는 "조그만 항아리에서 술이 익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환희는 정말 대단했다"며 웃었다. '보글보글' 술이 익어가는 소리에 매료돼 시작한 술 빚기는 이제 그의 천직이 됐다. 변호사와 로스쿨 교수 일을 모두 접고 강원도 홍천으로 향한 이유다. 은퇴하면 머물려고 신림동 강사 시절 사둔 땅(4700여 평)은 그대로 술 빚는 도가가 됐다. 술 빚는 방법은 ‘음식디미방’ 같은 전통 문헌을 찾아 익혔다. 그는 “기본은 전통 문헌으로 하되, 요즘 입맛과 당시의 입맛이 다른 만큼, 새롭게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술 빚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채 10년이 안 되지만 이미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지금 빚어내는 술은 탁주인 ‘만강에 비친 달’과 ‘배꽃필 무렵’, 증류식 소주인 ‘무작 53’과 '무작30‘ 등 모두 6종류다. 특히 떠먹는 막걸리로 유명한 '배꽃필 무렵'은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탁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술은 배꽃 필 때(4월) 빚는다는 의미로 이화주(梨花酒)로도 불린다. 빛깔이 희고 된죽과 같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돈보다 전통주 문화 넓히는 게 목표  

그의 도가에서 빚은 술은 고급 주류 매장에서도 단연 인기다. 올해 초 입점한 신세계백화점 주류 코너에서는 목표치의 두 배가 넘게 팔리고 있다. 김 대표는 "술을 빚어 돈을 버는 건 목적이 아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돈이 목적이 돼야 사업을 잘하고, 술은 그 수단이 돼야 하는데, 자신은 그 반대여서 사업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전통주를 먹고 싶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많다. 그간 전통주가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다. 좋은 술을 만들고 생산량도 안정적으로 늘리는 일, 당장은 그게 내 할 일이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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