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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선

이탄희는 김명수를 탄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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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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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은 단지 사법부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도덕적 지탄만 받는 처지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일단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다. ‘탄핵 논의’와 관련된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의 질의에 대법원은 3일 “(지난해 5월) 당시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없다”는 서면 답변서를 제출했다. 대법원 명의로 김 대법원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이다. 하지만 4일 공개된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은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라는 등 탄핵을 6번이나 언급했다. 허위공문서작성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권력 눈치 본 대법원장 행위 충격 #이탄희,‘법관 탄핵’처럼 앞장서야 #‘사법 농단’ 정당성 유지될 수 있어

직권남용 혐의도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임 판사에게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재차 사의를 표했을 때도 임 판사는 행정처로부터 “CJ(Chief Justice)의 뜻이다. 그냥 있으라”는 답을 들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의 사표 거부 명분은 ‘설쳐대는 국회로부터 내가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다. 이게 정당할까.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타인의 권리 행사를 방해할 경우 성립한다.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녹취록에서 탄핵 발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이 대목이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且置·내버려 둠)하고, 나로서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법보다 정치가 우선이라는 대법원장이라니, 상상이나 했던가. 명백히 위헌(헌법 103조: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적 발언이다. 또 평상시 정치권, 그중에서도 여권 기류에 이토록 예민했던 대법원장이라면 실제 재판이라고 달랐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나간 3년 5개월 재판뿐 아니라 남은 임기, 그가 법복을 입고 내릴 심판을 우린 수긍할 수 있을까. 김명수 대법원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최종심을 맡아도 될까.

일찍이 삼권분립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이는 18세기 몽테스키외였다. 봉건제 왕정을 탈피하기 위해선 법을 제정(입법)하고, 집행(행정)하고, 판단(사법)하는 분야를 구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를 제도로 처음 구현한 건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그는 “야심을 견제하는 건 야심을 통해서”(『연방주의자 논문』)라고 설파했다. 이같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광복 이후 대한민국도 표방했지만, 삼권분립만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청와대 출장소처럼 전락한 국회의 집권여당이다. 현 정부에서 17명이나 배출한 의원 겸직 장관도 입법-행정의 건강한 긴장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서상 대통령을 여전히 왕처럼 여기는, 군주제 잔재도 한몫했을 터다. 그나마 사법부가 삼권분립 최후의 보루라고 인식돼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에 철퇴를 내린 것도 “법정만큼은 평등하고, 권력에 예속돼선 안 된다”는 국민적 열망이 투영돼서다.

주지하다시피 양승태 ‘사법 농단’을 세상에 처음 알린 건 판사 이탄희였다. 그는 2017년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로 저항했다. 이같은 용기에 대해 그는 “양심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 정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가 지난해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민주당 배지를 달았을 때도 무조건 ‘법복 정치인’으로 폄하할 수는 없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이탄희 의원은 세월호 재판에 관여한 임성근 부장판사의 탄핵안을 주도했다. 그는 4일 국회에 탄핵안을 상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기경호와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재판에 함부로 개입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그렇다면 권력의 심기경호를 위해 사법부 시스템을 통째로 흔드는 사법 수장은 용납할 수 있는가. 이 의원은 또 이렇게 말했다. “탄핵 소추의 핵심은 피소추자를 단죄하는 것을 넘어 헌법위반 행위 자체를 단죄하는 데 있다. 단죄되지 않은 행위는 반드시 반복된다.” 그렇다. 거짓말, 정치적 중립 훼손 등 대법원장의 헌법위반 행위를 묵인한다면 사법부의 일탈은 반복될 수 있다.

하여 김명수 탄핵에 나서야 할 이는 야당이 아니라 이탄희 의원이다. 머뭇거린다면 그의 용기와 양심은 한낱 정파적 행위로 변질될 거다. 그가 첫 단추를 열었던 ‘사법 농단’의 정당성마저 뿌리째 무너질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판사는 신인가.” 지금 국민은 의원 이탄희에게 이렇게 되묻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법원장은 신인가.”

최민우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