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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의 법원 3년 도돌이표…'눈치의 리더십'이 자초했다

중앙일보

입력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3년이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으로 시작해 본인의 "탄핵 발언" 논란으로 ‘도돌이표’가 됐다. 초유의 대법원장 삼권분립 위반 발언과 거짓말 파문에 법원 내에선 “법원 개혁을 이룰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법농단 논란 한가운데 ‘개혁’ 기치로 취임

2017년 9월. 김 대법원장의 취임을 바라보는 법원 내부 눈길에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1968년 조진만 대법원장 이후 50년만 비(非)대법관 출신 대법원장이었지만 “과거와 달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여파인 사법농단 논란의 한가운데 임기를 시작한 김 대법원장은 그해 9월 25일 첫 출근길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추가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안철상 당시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을 단장으로 3차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2018년 5월 특별조사단은 “판사 사찰 문건 등이 발견됐지만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김 대법원장은 “현재의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 시스템으로는 사법행정 담당자가 권한을 남용해 사법부 존립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뼈아픈 현실을 확인했다”며 조사 결과를 국민 앞에 알리고 사과했다. 안 처장의 특별조사 결과를 김 대법원장이 정면 비판한 셈이다. 그렇다고 재조사를 결단하진 않았다.

대신 6월 김 대법원장은 "직접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하진 않겠지만, 인적·물적 자료 등 필요한 협조를 마다치 않겠다"며 사실상 검찰에 수사개시를 요청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두고두고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 개혁을 검찰 수사의 칼날에 맡겼다"라는 내부 비판을 받았다.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 검사가 주도하던 사법농단 수사로 악역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윤석열·한동훈 수사에 해결사 '악역' 넘겨 

실제 같은해 10월 김 대법원장은 ‘세월호 7시간' 재판 등 개입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를 법관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뒤 ‘견책’처분만 내렸다.

검찰 손으로 넘어간 사법농단 수사는 8개월 뒤인 2019년 3월 임 부장판사를 비롯한 전ㆍ현직 판사 1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은 한 달 앞서 강제징용 재판 거래와 사법부 블랙리스트 등 혐의로 먼저 기소됐다.

그런데 2차로 기소된 일반 판사들은 2020~2021년 1·2심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지난달 말 임기 만료로 퇴직을 앞둔 임 부장판사를 ‘표적 탄핵’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임성근 부장판사는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당일인 4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자신에 했던 "탄핵" 발언의 육성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4·15 총선 직후 시점에서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 “그냥 수리해버리면 (국회가)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는 발언이 9개월 뒤 벌어질 일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사표 수리 좀 해주시면"이라고 부탁하자 "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병가를 신청하면 수리할 테니 일단 쉬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탄핵 발언이 사법농단과 뭐가 다른가"

김명수 대법원장-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녹취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명수 대법원장-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녹취록.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법원 내부에선 김 대법원장의 육성이 공개되자 “사법농단 사태를 두고 김 대법원장이 무엇을 배웠고, 또 법원에 무엇을 바꿔왔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거짓말 해명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탄핵 때문에 사표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사법농단 사태와 무엇이 다르냐”라고 되물었다. 사법부 수장이 180석 여당의 눈치를 보고 정치적 고려 때문에 법관 사표를 반려한 것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 대법원장이 추진해온 ‘사법권 독립’과도 방향이 정반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그간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를 만들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낸 바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변화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껏 해온 것이 ‘사법부 독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법원 내부 사법행정권이 재판권을 침해할 소지는 줄여왔을지언정 외부로부터의 독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평가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에 비판적인 판사들 사이에선 법관 사회의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행정처 판사 수를 줄이는 식의 개혁에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결국 법원 수장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개혁안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했다.

김 대법원장 본인도 이날 퇴근길에 "이유야 어쨌든 임성근 부장판사님과 실망을 드린 모든 분께 깊은 사과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사과했다.

대법원장 육성녹음 후 부분 공개 "부적절한 행동"

사법부 수장과 독대를 녹음한 뒤 육성녹음 파일을 공개한 임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임 부장판사가 힘든 처지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고위 공직자로서 대법원장과 둘 만의 대화를 녹음한 데 이어 전체가 아닌 일부 발언만 공개한 건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다는 비판도 많다”고 전했다.

대구지법 정욱도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절차나 징계절차와는 별도로 헌법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뚜렷하다”며 “탄핵심판은 고위 공직자가 응당 감내할 몫”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건강상 물러나겠다는 사람의 사표를 9개월여 뭉개고 결국 탄핵소추를 받게 한 과정을 보면 오죽했으면 임 부장판사가 녹음 파일을 공개했느냐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박현주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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