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녹음 파일이 공개돼 사법부 전체에 파문이 인 가운데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와 면담 직전 이틀 연속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대법원장이 여권을 의식해 사표를 반려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만큼 이 때문에 ‘사법부 수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망각한 발언을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와 면담 전날인 지난해 5월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5부 요인 부부 기념식 자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김 대법원장 부부 외에 정세균 국무총리,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내외도 함께했다. 이날 만찬은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인 점을 고려해 문 대통령과 5부 요인 모두 부부 동반으로 모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주빈인 문희상 의장에 "국민들이 일하는 국회, 협치하는 국회를 바라고 있는데 두고두고 후배 의원들에게 귀감이 되실 것"이라고 덕담했다. 방명록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화이부동(和而不同·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는 않는다) 정신으로 걸어온 40년을 축하드린다"고 적었다.
김 대법원장은 다음날인 22일에도 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청와대에선 오후 2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중앙선관위원 임명 수여식과 더불어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수여식에는 김 대법원장과 함께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도 참석했다.
김명수, 文 만나고 두 시간 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김 대법원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고 난 2시간 뒤인 오후 5시 대법원에서 임성근 부장판사를 만나 논란이 될 발언을 쏟아냈다. 임 부장판사 측이 4일 공개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가 그만두겠다는 데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며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했다. 이어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대법원장이)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전날 만찬에서 국회를 두고 협치와 통합 메시지를 발신하자 김 대법원장은 이를 '정권과 사법부, 국회와 사법부의 협치·통합'이라고 잘못 들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3일 대법원은 국회 등에 제출한 답변에서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고 임 부장판사가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도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