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싶지 않은 인류, 어른 없는 ‘피터 팬 세상’ 될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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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호 26면

[미래 Big Questions] 젊음의 미래는 무엇인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의 ‘젊음의 샘’(1546). 늙음을 늦추려는 인류의 꿈은 이루어질수 있을까. [베를린 회화갤러리]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의 ‘젊음의 샘’(1546). 늙음을 늦추려는 인류의 꿈은 이루어질수 있을까. [베를린 회화갤러리]

높이가 50cm도 되지 않으니 어른은 들어갈 수도 없었다. 덕분에 체격이 작은 여성과 아이들이 긴 갱도들 기어 석탄을 끌고 나가야 했다. 너무나도 좁고 더워 대부분 벌거벗고 일을 했다. 광주리에 채광된 석탄을 가득 담아 하루 12시간 갱도를 기어 다녔던 19세기 초 어린 광부들. 언제나 바쁘게 일했기에 ‘허리어(hurrier)’라 불리던 그들은 얼마나 어렸을까? 1856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아동노동법은 탄광에서 아홉 살 이하 아이들의 노동을 금지시켰으니, 그 전까진 더 어린 아이들이 허리어로 일했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세 살에서 네 살짜리 아이들조차 석탄을 운반했으며, 더 어린 아이들은 하루 12시간 갱도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문을 여닫아 주었다고 한다.

젊음의 긍정과 늙음의 비관 모두
자연이 인간에 부여한 착시 현상

젊지만 결국 부모와 같은 삶 반복
늙어가며 삶의 가치 디스카운트

노화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노력
죽는 날까지 어른되지 못할 수도

근대 이전엔 너무 일찍 ‘작은 어른’ 취급

한참 뛰어놀고 글과 세상을 배우고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 21세기 우리는 상상도 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들이 나른 석탄이 영국 산업혁명의 기반이 됐고, 오늘날 여전히 많은 제3세계 국가에선 아이들이 공장과 밭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현상조차도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농촌에서 대부분 아이는 저렴한 노동력일 뿐이었고, 전쟁터에서 역시 아이들은 빠지지 않았다. 중세기 기사들의 갑옷을 입혀 주던 아이들, 장교의 짐을 나르던 아이들, 돌격하는 군인들보다 더 앞장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었던 아이들, 그리고 스스로 손에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향했던 아이들…. 어떻게 인류는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을 공장과 전쟁터로 내보낼 수 있었던 걸까? 오랫동안 인류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 그들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대부분의 동물과는 달리 이 세상에 던져진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하는 인간. 걷고 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주어진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어린아이들을 단순히 팔과 다리만 다 자라지 않은, 하지만 이미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고 따를 수 있는 ‘작은 어른’이라고 착각하게 된 이유다. 작은 어른이기에, 다른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아이는 단순히 작은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천억 개나 되는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연결고리)가 미리 완성된 상태로 태어날 수 없기에, 뇌는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활용해 뇌구조를 완성시킨다. 자주 사용되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고리는 강화되지만,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들은 약화되거나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오랜 기간’이란 얼마 동안일까? 정확한 시작점과 기간은 다르지만, 대부분 포유류는 태어난 이후 ‘결정적 시기’를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 탄광에서 일하던 아이들. 체격이 작은 아이들이 긴 갱도를 기어 석탄을 끌고 나갔다. [베를린 회화갤러리]

19세기 초 탄광에서 일하던 아이들. 체격이 작은 아이들이 긴 갱도를 기어 석탄을 끌고 나갔다. [베를린 회화갤러리]

고양이의 경우 태어난 이후 2~3주쯤 시작해 8~12주까지 시냅스들이 유연성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원숭이 종은 생후 1년까지 뇌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들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결정적 시기는 언제일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간접적 데이터와 역사적 사례를 기반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결정적 시기는 생후 10~12년쯤 끝난다고 가설해 볼 수 있겠다. 뇌과학적으로 아이들은 아직 완벽한 뇌를 가지지 않은, 여전히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쳐 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19세기 초 갱도를 기어 다니던 아홉 살 이전 아이들의 뇌는 생물학적으로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들의 경험은 고스란히 그들의 뇌를 완성시키는 결정적 요소가 됐을 것이다. 아이들이 생존해야 했던 지옥 같은 환경은 바로 그런 곳에서의 생존에 최적화된 뇌를 만들었고, 폭력과 차별과 폭행으로 가득한 세상이 신경생물학적 ‘고향’이 돼 버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평범한 사람의 삶은 언제나 지옥이었고, 인생에서 유일한 희망은 젊음뿐이었다. 가장 건강한 몸, 가장 아름다운 외모, 가장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는 젊음이기에, 이탈리아 화가 바르톨로메오 베네토는 봄과 꽃의 여신 ‘플로라’를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공평 완화 장치

젊음이 봄과 여름이라면, 늙음은 가을과 겨울이다. 얼마 전까지 대리석 같았던 피부는 어느새 깊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거울에 보이는 나의 얼굴은 더는 내가 아니다. 이제 초저녁부터 졸리기 시작하고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TV 연속극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 몸과 머리만이 아니다. 더는 돌아오지 않는 젊음의 첫 희생자는 마음이다. 기쁨과 기대로 가득하고 새로운 날이 언제나 기대됐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세상은 어둡게만 보인다. 새로운 하루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고, 우리의 마음은 점점 절망과 냉소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왜 젊음은 언제나 긍정적이지만, 늙음은 비관적이고 어두울까? 물론 세상 그 자체가 어둡고 우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능하기 짝이 없고 의미와 재미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부모님들의 삶. 우리는 언제나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해 언제나 결국 부모님과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긍정은 무지와 무식을 기반으로 한 착시현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늙은 시절의 비관과 우울함 역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세상이 더 나빠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시점이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언젠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자연은 인간에게 ‘인지적 진통제’를 하나 우리 뇌에 심어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공평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기 위해 자연은 늙어 가는 우리에게 세상이 점점 더 비관적이고 우울하게 보이는, 삶의 가치를 점점 디스카운트하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 가고, 죽는다. 먼 미래 브레인 업로딩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불사신이 등장하기 전까진 ‘변치 않는 인간의 기본 조건(conditio humana)’ 중 하나이겠다.

그렇다면 젊음과 늙음의 미래는 무엇일까?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인류는 늙음을 최대한 지연하거나 사라지게 하려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여든 살이 20년 전 예순 살이고, 오늘날 예순 살이 20년 전 마흔 살이라면, 20년 후 예순 살은 오늘날 열 살, 스무 살이지 않을까? 어른 같은 아이가 과거의 상징이라면, 미래는 다시 아이 같아지는 어른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어른이 되길 거부한 피터 팬같이, 미래 인류는 어른이 되길 거부하기에, 죽는 그 날까지 어린아이의 유치함과 무지를 유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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