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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자율 결정"이라더니…산업부 문건 "조기폐쇄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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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비서관). 연합뉴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비서관).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전·현직 장관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자율적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이 당시 산업부가 한수원의 결정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대거 복구했다.

한수원 이사회 3주 전 산업부 "월성 1호기 영구중단 요청해야"

29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공소장 범죄일람표에는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월성 1호기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이 담겨 있다.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는 지난해 12월 이들을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감사원법 위반, 방실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복구한 파일 중에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하기 3주 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80524_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도 있었다. 이 문건에는 월성 1호기와 관련해 영구 중단 의사결정, 지역 주민에 대한 설명회 등을 한수원에 요청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이와 함께 '180530_한수원 사장 면담 참고자료' '4234' 문건 등도 산업부와 한수원간 협의 자료로 판단했다. 한수원 사장 면담 참고자료에는 한수원 태스크포스(TF)·회계법인의 평가 결과 기준 월성 1호기 이용률인 56.7%(최초 경제성 평가선 이용률 85%), 한수원 이사회가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 중단을 결정할 필요성, 이사회 사전 설명 필요성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의 파일 가운데 2018년 5월 24일 자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문건도 포함됐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2019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 3주 전에 작성된 문건이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의 파일 가운데 2018년 5월 24일 자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문건도 포함됐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2019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 3주 전에 작성된 문건이다.

'4234' 문건에는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필요가 있고, BH(청와대·Blue House) 기보고 사항이므로 조기폐쇄 결정 이후 즉시 가동중단이 필요하며, 6·13 지방선거 직후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건 삭제를 실행해 구속기소 된 A서기관은 감사원 조사에서 "2019년 12월 1일 오후 10시가 넘어서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월성 1호기 감사 관련 폴더를 비롯한 각종 업무용 폴더를 삭제한 사유는 다음 날 오전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이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감사관에게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관련 자료가 없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삭제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파일 작성일자_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으로 돼 있었던 파일명을 '4234'으로 수정해 삭제했다"며 "파일이 복구됐을 때 파일명으로는 어떤 문서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라고도 했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해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해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 한수원 이사회 날짜·결과 靑에 미리 보고" 

산업부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 날짜와 함께 회의 결과까지 담은 내용을 미리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8년 5월 23일 작성된 것으로 돼 있는 '180523_에너지 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문건에는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때는 월성 1호기 경제성에 대한 외부 용역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 시점이었다. 검찰이 청와대와 산업부가 미리 원전 폐쇄를 결정해 놓고 한수원에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한수원 이사회가 임박한 2018년 6월에는 대통령 보고용 문서가 청와대의 수정 요청으로 다시 작성한 흔적도 나타났다. '180610_대통령 에너지전환(원전) 보고_원전국_v(BH 수정요청 반영 재제출)' 문건에서다. 또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의결 관련 보도자료에 월성 1호기 근로자 고용보장 사항 등을 포함하는 계획 등을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비서관과 협의하는 '180611_산업비서관 요청사항' 문건도 나왔다.

검찰은 삭제 파일 중에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과 원전 찬·반 시민단체, 한수원 노조 동향을 담은 문건도 있었다고 적시했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2일 월성 1호기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는 데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을 대상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달 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 당시 공무원이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무실에 관계자가 업무 중에 있다.뉴스1

검찰이 지난해 12월 2일 월성 1호기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는 데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을 대상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달 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 당시 공무원이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무실에 관계자가 업무 중에 있다.뉴스1

성윤모·백운규 "한수원 자율적 결정이었다"

이 같은 수사 결과는 그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산업부 설명과 배치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해 한수원에 부당한 강요나 압박을 가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한수원도 이사회를 통해 경제성이 불투명하다는 점과 정부 정책 방향 등을 고려해 폐쇄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소환조사를 받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수원은 정부의 정책 결정과 별개로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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