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구소 나와 수백억원대 모방품 만들려 한 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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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검찰청. 뉴스1

수원지방검찰청. 뉴스1

중소기업이 개발한 2차 전지 배터리 핵심 부품인 '충방전기' 기술을 경쟁사로 유출하려 한 연구소장과 연구원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춘)는 25일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A씨(42)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A씨를 도운 B씨(40) 등 연구원 3명과 이들이 유출한 기술로 모방품을 만들게 한 경쟁사 관계자 C씨(56)를 불구속기소 했다.

퇴직 연구소장이 연구원들과 기술 유출 

A씨 등은 지난해 2~3월쯤 P사가 개발한 '모듈형 충방전기'의 회로도와 설계도, 프로그램 소스코드 등 개발 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P사의 연구소장으로 일한 그는 지난해 2월 퇴직 전 개인 외장 하드에 개발 자료를 담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회사를 차린 뒤 P사 연구소에서 일하던 B씨 등 연구원들을 차례로 영입해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모방품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방전기'는 2차 전지 배터리에 특정 전압 등을 가해 충전·방전 등을 확인하는 배터리 검사 장비의 핵심 부품이다. 특히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2차 전지 배터리는 만든 제품을 시중에 내놓기 전에 안전성 검사 등을 하기 때문에 '충방전기'같은 배터리 검사 장비가 중요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기존에 판매 중인 주문제작형 충방전기와 P사의 모듈형 충방전기. 수원지검

기존에 판매 중인 주문제작형 충방전기와 P사의 모듈형 충방전기. 수원지검

그러나 기존 주문제작형 충방전기는 대형 캐비닛 형태라 부피가 컸다. 이런 충방전기의 크기를 책상 서랍 형태로 줄이고 표준화한 것이 P사의 '모듈형 충방전기'다. 기존 제품보다 설비 단가는 물론 유지·보수 비용도 크게 낮췄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기술을 높이 사 P사를 '소·부·장 강소기업 100곳' 중 전기·전자 부문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검찰 압수수색 뒤에도 모방품 제작 

P사는 납품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A씨가 동일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을 알고, 지난해 7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지난해 8월 A씨 등이 만든 모방품과 관련 자료를 모두 압수했다.

하지만, A씨는 P사의 다른 직원(불구속기소)에게 다시 자료를 빼내 지난해 9~11월 2차로 모방품을 만들었다. 검찰은 A씨를 추가 기소하고 A씨의 업체에 제품 제작을 사주한 H사의 실운영자 C씨도 불구속기소 했다.

A씨는 검찰에서 "충방전기 제작 기술은 영업비밀이 아니다"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P사는 한 대기업과 500억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진행 중인데 이 기술이 유출됐다면 3년간 1400억원(피해 업체 추산)의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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