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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1명 잘못에 왜 3000명이…" 사라진 '변시 2번'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이번 변호사시험과 관련해 특정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가 유출됐다는 논란이 계속되자 법무부는 해당 문항에 대해 전원 만점을 주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5일 한 변호사시험장의 모습. 연합뉴스

이번 변호사시험과 관련해 특정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가 유출됐다는 논란이 계속되자 법무부는 해당 문항에 대해 전원 만점을 주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5일 한 변호사시험장의 모습. 연합뉴스

얼마 전 치러진 변호사시험에서 ‘연세대 모 교수 강의자료와 똑같다’며 논란이 된 문제를 법무부가 아예 채점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또 다른 불공정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법무부는 20일 “10회 변호사시험 공법 기록형 문제 중 2번에 대해 응시자 간 형평성과 시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응시자 전원 만점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수 등 학자 위주로 구성된 검토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법전원장·판사·변호사 등이 섞인 관리위원회에서 최종 의결한 내용이다.

어려운 2번에 일부러 집중했는데…‘1번만 채점’ 날벼락

누군가는 미리 봤을 문제인 줄 모르고 열심히 2번을 쓴 응시생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1번(헌법)과 2번(행정법)을 두 시간 내에 작성하는 게 공법 기록형 과목인데, 수십페이지 기록을 읽고 서면을 작성하려면 시간이 빠듯해 많은 학생이 ‘선택과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두 번째 변호사시험을 치른 A씨(33)는 “문제를 보고 2번이 신유형에 난도도 높아 ‘잘 쓰면 표준점수가 괜찮겠다’고 판단해 많은 시간을 썼고 그 결과 1문은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작성했다”면서 1번만 채점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했다. 또 다른 로스쿨생 B씨(28)는 “전략상 1문과 2문 중 자신이 좀 더 잘할 수 있는 문제를 선택하는 건데, 한 문항만 채점하면 우연한 사정으로 유불리가 생긴다”고 했다.

논란의 문제는 첫날(5일) 오후에 치러진 '공법 기록형' 과목 2문제 중 2문이다. 변호사시험 총점은 1660점으로 해당 문항의 배점은 50점이다. 표준점수로 환산하고 많은 학생들이 합격구간에 몰려있어 작은 차이로도 합불이 갈린다는 것이 응시생들의 설명이다.

논란의 문제는 첫날(5일) 오후에 치러진 '공법 기록형' 과목 2문제 중 2문이다. 변호사시험 총점은 1660점으로 해당 문항의 배점은 50점이다. 표준점수로 환산하고 많은 학생들이 합격구간에 몰려있어 작은 차이로도 합불이 갈린다는 것이 응시생들의 설명이다.

지방의 한 로스쿨에 다닌 C씨(29)는“8·9회 시험에서도 연세대 자료와 흡사한 문제가 나왔단 얘기가 있었지만 믿지 않았는데, 이번에 실체가 드러나며 허탈했다”며 “지방대 로스쿨과 소위 SKY 로스쿨의 합격률 차이가 이런 부분에서 나는구나, 애초에 변호사시험이라는 것에 공정성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잘못은 1명, 이익은 100명, 무효는 3000명?” 

논란의 문제는 연세대 모 교수가 학교 모의고사에서 낸 문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로스쿨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알려졌다. 해당 교수는 이번 시험 출제위원은 아니지만, 출제위원들이 고를 수 있는 ‘문제은행’에 들어갈 문제를 냈다고 한다. 이번 시험 후 검토에 참여한 위원 13명 중 12명은 “(해당 교수의 문제와 변호사시험 문제의) 일정 부분 유사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는 게 법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사한 문제를 모범답안까지 봤다면, 연세대 학생들은 2문뿐 아니라 1문에서도 유리했을 거란 주장도 있다. 재시생 D씨(32)는 “미리 문제를 풀어본 수험생이라면 2문의 정답을 알기 때문에 2문을 빨리 써낼 수 있었을 것이고 1문에 쓸 시간을 더 확보했을 것”이라며 “2문만 무효로 하면 그 학교에 부정출제로 인한 불이익이 되기는커녕 이익이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응시생 E씨(34)는 “이전 변호사시험에서 객관식 문제가 잘못 출제돼 전원 만점처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문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학교에서 부정한 행위가 벌어진 것”이라며 “100여 명의 연세대 학생들이 수혜를 입었다고 해서 공정하게 시험을 치른 3000여명의 학생의 문항을 전면 무효로 하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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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2문 채점을 않기 때문에 ‘2문을 잘 쓰느라 1문을 못 썼다’는 걸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과 관련한 법무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해당 문제 이슈가 불거진 후 법무부에서 ‘합격 발표 후엔 소송 화력도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그간 정보공개청구에도 채점기준표를 공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2문으로 인한 피해를 학생들이 입증하지 못할 것’이란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가능한 최선’을 택한 것이란 입장이다. 법조인력과 관계자는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교수, 법전원장 등을 통해 학생들의 상황을 들었고, 자체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온 분들도 계셨다”고 했다. “시간을 나누어 쓰는 시험에서 2문에 집중한 학생들은 손해를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까지 고려한 것은 아니고, 전원 만점 결정이 완벽한 방안은 아니다”고 했다. 이번 시험에 대해 법무부의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변호사시험 출제 경험이 있는 부산대 로스쿨 정승윤 교수는 이번 사태가 “어느 한 교수의 과욕과 어리석음이 불러온 참화”지만 “2문만 무효로 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책임 회피하려는 법무부의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SNS에 공개 글을 올렸다. 정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느 시험에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은 늘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그 사회가 올바른 사회냐 낙후된 사회냐를 가르는 기준”이라며 “당장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학생들에게 공법 기록형에 한해 재시험을 치르자고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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