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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연대 모의고사와 동일" 교수들도 놀란 변시 '복붙'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 문제는 시험 전에 접해보지 않고서는 정말 공법기록(변호사시험 과목)의 신이 와도 답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제10회 변호사 시험(5~9일)이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기록형 시험이 한 로스쿨 모의고사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의혹을 제기한 수험생들에 따르면, 연세대 로스쿨의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수업(공법쟁송실무)에서 나온 모의고사 및 강의 자료와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문제가 출제됐다는 것이다.

해당 문제는 공법(헌법, 행정법) 과목의 기록형 시험에 출제된 것이다.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이 시험이 가장 어려웠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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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똑같다고 봐"  

이번 변호사 시험을 치르고 있는 C(32)씨는 지난 7일 "첫날 마지막 시험 문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해 꼼짝없이 당한다는 이른바 '불의타' 였다. 강사나 교수님들이 강의할 때 잘 안 가르치는 부분으로 매우 세부적인 문제라 다들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로스쿨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연대 로스쿨 문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험 중간에 이런 의혹이 나와 유감"이라고 전했다.

수험생 등에 따르면 기록 시험은 수십장 짜리 서류를 구성해 문제를 내기 때문에 풀어야 할 논점이 세부적으로 겹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변호사시험과 연대 모의시험에서 원고는 모두 종중의 재산과 관련한 문제였다고 한다. 행정부가 공익을 위해 권리나 소유권을 강제로 수용했을 때 벌어지는 권리 다툼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험생들에게 공법 과목을 가르치는 강성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지음)는 "변호사 시험은 문제가 50%도 일치하기 어려운데 이건 거의 100% 일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뿔난 교수들 "시험 전에 안 보면 신도 답 어려워"

연대 강의계획서 캡쳐

연대 강의계획서 캡쳐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일부 로스쿨 교수들도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고 뭔가 일이 있었다면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시험 직후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선균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지나치게 지엽적인 사실관계로 미리 연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가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시험 전에 접해보지 않고서는 공법기록의 신이 와도 답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사 문제 논란이 제기된 연세대의 수업은 A교수가 헌법을, B교수가 행정법을 담당한다.

연세대가 2년 전에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도 다시 회자하고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군대 영창제도 합헌 결정에 대한 문제가 변호사 시험(공법 사례형)에 나왔는데, 이에 앞서 A교수가 연세대 열람실 복도에 이 주제와 연관된 사례의 쟁점을 게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홈페이지 캡쳐

홈페이지 캡쳐

"출제 안 들어가 잘 몰라. 올해 시험 문제 아직 못봐" 

A교수는 8일 오전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험 직전 학생들에게 준비 자료를 나눠주고 있다. 당시 영창제도 문제는 헌재 판례에서 제일 뜨거운 쟁점이어서 지적하지 않은 교수가 문제"라면서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지금 이야기가 나오는 행정법 관련해서는 같은 수업을 진행하는 다른 교수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올해 변호사 시험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학교 모의고사에서 출제한 B교수는 이날 "저는 출제에 들어가지 않아 잘 모른다"면서 "올해 변호사 시험 문제를 아직 아예 못 봤다. 저는 출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채점 평 다 듣고 시험 본 셈"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뉴시스]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뉴시스]

변호사시험출제위원 출신의 한 법조인은 "문제 풀과 예비문제를 시험관리위원회에서 준비한다. 문제 풀로 자기 학교가 낸 문제를 해선 안 되고 각 학교 출제 문제도 똑같이 내선 안 된다. 문제와 쟁점을 좀 섞는 등 보통 판례를 응용하는 문제들을 조합해 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세대 학생들은 이 문제의 채점 평까지 다 듣고 나서 시험을 본 셈인데 석연치 않은 일이다.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공법 기록형 문제 출제위원 중 해당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교수는 없다"고 밝혔다. 해당 과목 출제 위원에 연세대 교수는 아예 없다는 설명이다. 이어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2년 전 회계사 시험 때도 부정 출제 의혹

지난 2019년 공인회계사 2차 시험에서도 '부정 출제' 의혹이 있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서울의 한 사립대 고시반에서 치른 모의고사 문제가 실제 시험에서 유사하게 나왔다는 의혹을 조사한 뒤 논란이 된 문항 2개를 모두 정답 처리하고, 문제를 낸 출제위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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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 8개월 뒤인 지난해 5월 서울서부지검은 논란이 된 교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양 문제의 동일ㆍ유사성에 관해 이견이 존재할 여지가 있고 피의자가 위 모의고사를 베껴서 출제한 것으로 단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법전 밑줄 논란, 확진자 응시 논란도  

이번 변호사시험에서는 ‘밑줄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시험용 법전에는 낙서나 줄긋기를 해선 안 된다"고 밝혔지만, 일부 고사장에서 법전에 밑줄 긋는 행위가 용인되면서 형평성이 문제 됐다. 법무부는 지난 7일 뒤늦게 시험 규정을 바꿔 법전 밑줄긋기를 허용했다. 또 법무부가 시험 공고를 내며 응시를 제한했던 코로나19 확진자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시험 직전 응시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수험생들 사이 혼란이 커졌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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