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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vs삭발 전사···아군끼리 총질? 부산이 불안한 野

중앙일보

입력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자 경선에 나선 박형준 동아대 교수. 송봉근 기자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자 경선에 나선 박형준 동아대 교수. 송봉근 기자

멀리 있는 적보다 바로 옆에 있는 적이 더 밉기 마련이다. 정적 제거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일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이유기도 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나눠 먹을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그런 일은 정당 내부의 경선에서 주로 벌어진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2007년 경선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극한 대립 이후 10여년 동안 보수 진영을 갉아먹은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14년 전 경선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갈등이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경선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당시의 양강 구도와 달리 지금은 앞서 달려가는 1등 주자와 뒤쫓는 주자들과의 경쟁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본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경쟁은 과열되고 있다.

①‘키다리 아저씨’와 ‘삭발 전사’의 경쟁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경쟁자들에 앞서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 교수는 키 181cm로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박 교수 측은 “국회 사무총장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붙여준 별명”이라며 “JTBC ‘썰전’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맞서면서도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은 게 그런 이미지를 더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농구와 테니스를 즐기는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2014년 열린 중앙행정기관 테니스 동호인 대회에선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왼쪽은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테니스 시합을 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이언주 전 의원이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는 모습. [박형준 교수측 제공, 한영익 기자]

왼쪽은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테니스 시합을 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이언주 전 의원이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는 모습. [박형준 교수측 제공, 한영익 기자]

외유내강 스타일인 박 교수에 비해 경쟁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투사에 가깝다.

이언주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보수 여전사’로 통한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보수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여성 정치인으로는 흔치 않은 삭발까지 했다. 2019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자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택했던 투쟁 방식이었다. 그는 당시 삭발식을 비판한 이들을 향해 “쇼라고 비웃는 구태 정치인들, 감정 같아서는 전부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쏟아붓기도 했다.

21일 전격 불출마를 선언하긴 했지만, 시장 선거에 열심히 임했던 유재중 전 의원도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이 격해지자 삭발을 통해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②부산 사투리 논쟁

부산시장 선거에서 정책 경쟁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사투리 경쟁이다. 타깃은 박형준 교수다. 겉으로 보기에 완연한 서울말을 쓰기 때문이다. 표준어 쓰는 사람을 ‘서울 촌놈’ 취급하는 지역 정서로 볼 때 박 교수의 그런 면모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판단이 경쟁자들에게 깔려 있다.

이 문제는 선거의 쟁점이 돼 있다. 이진복 전 의원은 최근 일부 언론에 박민식·유재중 전 의원 등 박 교수를 제외한 예비후보 간의 단일화 추진과 관련해 “부산 사투리 쓰는 후보들끼리 한번 모여서 얘기를 해보자고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투리 논란엔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가세했다. 김영춘 전 의원은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박 교수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언변은 박 교수가 훨씬 낫다. 저는 경상도 사투리로 눌변인 데다가 발음도 좋지 않다. 콤플렉스다”라고 했다. 콤플렉스라는 표현을 썼지만 은연중에 사투리 쓰는 자신을 부각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박 교수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 지금도 부산에 정착해 대학에서 일하는 부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지난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직접 “밥 뭇나”라며 사투리 시연을 하기도 했다.

③부작용 우려 커지는 내부 경쟁

경선이 조기에 과열되다 보니 국민의힘 내부에선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이런 우려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8~20일 조사해 21일 공개한 부산·울산·경남 지역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4.5%, 국민의힘 29.9%였다. 일주일 전 같은 조사에서 각각 24.7%, 40.7%였던 게 급반전한 것이다. 표본이 작기는 하지만 “시그널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

그러자 당장 당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부산이 지역구(사상)인 장제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며 “하락세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부산 민심이 최근 조금씩 돌아서고 있음이 느껴진다”고 적었다.

경선 주자인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시장 선거 나온 사람들이 서로 싸워대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중앙당 공천 심사 서류에 건의사항을 적는 난이 있어서 ‘검증이 필요하다면 당 차원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검증을 하고 후보 간에는 서로 비방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썼다”고 했다.

또 다른 예비후보인 박민식 전 의원도 “지금 많은 분들이 부산시장은 따논 당상처럼 생각하는데, 그 예상도 잘못되었지만 이번 부산시장 선거판이 대선에 든든한 디딤돌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서울시장 선거에 비해 부산시장 선거에 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연히 신경 써야 한다. 선거라는 게 쉬운 데가 어디 있느냐”며 “설 전에 부산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이 정책 대결이 아니라 인신공격성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며 “시민을 보지 않고 자신만 보는 ‘거울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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