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읽기] 남편들의 錢錢긍긍

중앙일보

입력

아내 몰래 진 빚 3천만원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S씨(34)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해 보지만 묘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빚쟁이로 전락한 이유는 지난 몇년간 부모님 뒷바라지를 한 데 있다.

등록비 마련도 벅찬 집안의 장남인 그는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내세울 특기도 없지만 성실을 밑천으로 생활해 온 덕분에 작은 회사에 다니며 비교적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 소개로 만난 아내는 1년간 연애 끝에 6년 전 결혼해 현재 네살된 딸을 두고 있다.

신접살림은 10평 남짓한 다세대주택 전셋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시작했다. 다행히 알뜰한 아내 덕분에 해마다 살림은 조금씩 늘었다. S씨는 누가 봐도 단란한 신세대 소시민 가장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화장품 외판원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부모님이 늘 걱정거리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부모님은 병원비 등 목돈이 들 땐 으레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고, 사정을 뻔히 아는 그는 거절하지 못하고 뒷돈을 대주고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 얼마간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그에게 목돈이 있을 리 없다. 부득불 아내 몰래 급한대로 1백만원으로 시작한 카드 빚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이제는 3천만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혼자 힘으로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안다. 하지만 아내에게 말했다간 평지풍파를 일으킬 게 뻔해 엄두조차 못낸다. 그간 콩나물값 아껴가며 저축한 아내 생각을 하면 미안하기 그지없다.

S씨 사연은 자녀 뒷바라지로 노후에 빈손만 남은 부모님과 핵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신세대 자녀간 발생하는 서민가정의 돈 문제를 여지 없이 보여준다. 딱히 말은 안해도 부모는 결국 자신들의 노후를 자식이 책임져주겠거니 생각한다. 반면 아내는 남편의 월급은 처자식 몫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끼인 남편은 괴로울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렵겠지만 방법은 하나다. 아내와 부모님을 모두 설득해 부모님 몫, 처자식 몫에 대한 가족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아내의 요구가 지나치거나 부모님의 기대가 과할 땐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이자 부모님의 자식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켜야 한다. 처음엔 아내나 부모님으로부터 차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가족이란 게 원래 서로의 처지를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공동체가 아닌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하려는 상대와 백년 해로를 기약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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