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은 좁아서…이젠 익숙한 K팝 다국적 걸그룹

중앙일보

입력 2021.01.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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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컴백 무대를 이틀 앞둔 18일, 걸그룹 체리블렛의 일정은 촘촘하게 짜여있었다. 20일 첫번째 미니 앨범 ‘체리 러시(Cherry Rush)’를 내놓는 이들은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입을 의상 피팅부터 시작해 안무 레슨,  런스루 연습 등으로 하루종일 바빴다.  체리블렛은 한·일 소녀로 구성된 7인조 걸그룹이다.  2019년 데뷔해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일본인 멤버 메이와 레미에게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가수의 꿈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일본·대만 멤버 트와이스
한·일 신드롬 일으키며 최정상
블랙핑크·아이즈원 등으로 바통
“동북아 갈등 변수, 팬덤으로 극복”

Mnet의 한·중·일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 플래닛 999'. [사진 CJ ENM]

Mnet의 한·중·일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 플래닛 999'. [사진 CJ ENM]

K팝 걸그룹의 다국적화는 이제 더는 낯선 조합이 아니다. 트와이스,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등 K팝을 대표하는 주요 걸그룹은 대부분 다국적 멤버로 채워져 있다. 이른바 K팝 2.0 모델(한국+해외국적 가수로 팀을 구성)의 전성기다.  음악전문채널 Mnet은 최근 ‘걸스 플래닛 999’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며 공개 오디션 모집에 들어갔다.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여성 아이돌 지망생을 대상으로 서바이벌 오디션을 벌여 다국적 걸그룹을 결성하겠다는 시도다. 보이그룹도 슈퍼주니어, NCT, 엑소, 세븐틴 등 다국적 그룹이 있다. 하지만 이중 다수가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거나 지역활동 유닛 등으로 제한적으로 시도됐다. 또는 한국 멤버를 중심으로 결성되고 외국인 멤버 소수가 덧입혀지는 정도다. 반면 걸그룹은 외국인 멤버가 팀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멤버의 절반을 외국인이 맡을 정도로 대담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국과 태국인으로 구성된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한국과 태국인으로 구성된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시작도 걸그룹이 먼저였다. 선구자는 1998년 한·중·일 3개국 출신 5인조 걸그룹 써클이다. 데뷔 당시 시선을 끌었지만, 멤버 탈퇴와 흥행 부진으로 2년 만에 해체됐다. 가요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고 오프라인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한국에서의 활약이 일본으로 전달되지 않는 등 다국적 멤버 구성의 시너지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K팝 최초 다국적 걸그룹 써클.

K팝 최초 다국적 걸그룹 써클.

걸그룹에서 다국적 조합이 활성화된 가장 큰 이유는 시장성이다. 한국에선 걸그룹의 팬덤이 보이그룹보다 약하다. 지난해 음반판매량만 봐도 명확하다. 가온차트가 집계한 2020년 음반 판매량에 따르면 1위부터 10위까지 걸그룹은 블랙핑크(THE ALBUM·5위)뿐. 그다음 순위는 트와이스(More & More)로 12위였다. 즉, 한국 시장만 겨냥해서는 걸그룹은 ‘대박’을 터뜨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써클 실패 이후 걸그룹에 다국적 구성의 불을 붙인 것은 트와이스다. 한국인 5명, 일본인 3명, 대만인 1명으로 구성된 트와이스는 한국,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명실공히 양국 최정상 자리에 올랐다. 이후 블랙핑크(한국·태국), (여자)아이들(한국·대만·중국·태국), 우주소녀(한국·중국), 아이즈원(한국·일본), 체리블렛(한국·일본), 로켓펀치(한국·일본) 등 다국적 걸그룹이 줄줄이 나왔다.

한국인 5명, 일본인 2명으로 구성된 7인조 걸 그룹 체리블렛.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한국인 5명, 일본인 2명으로 구성된 7인조 걸 그룹 체리블렛.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이중 아이즈원은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다국적 조합의 가능성을 일깨웠다. 아이즈원은 한국의 각종 음악프로그램뿐 아니라 일본 오리콘차트에서도 수차례 정상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 2월 낸 정규 1집 ‘블룸아이즈’(35만6313장)와 6월에 낸 미니 3집 ‘오네릭 다이어리’(38만9334장)는 역대 걸그룹 초동 판매량 2·3위였다. ‘프로듀스’ 조작 파동과 역대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 등 악재 속에서 거둔 성공인 만큼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Mnet에서 ‘프로듀스48’ 이후 꺼낸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 재차 다국적 조합을 들고 나왔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위원은 “아이즈원 사례처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흥행을 노릴 수 있는 성공 사례가 이미 있기 때문에, 여기에 중국을 하나 더 추가했다는 측면에서 나름 안정적인 성공 모델인 것 같다”며 “한·중·일 3국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만큼 시청자 수는 국내보다 몇배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국적 구성에서 일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 역시 시장성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걸그룹 팬덤이 강하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들어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태국 출신도 늘어나는 추세다. 블랙핑크의 리사, (여자)아이들의 민니가 대표적이며 CLC의 손, Z-GIRLS의 벨도 태국인이다. 또 최근엔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과 ‘아이돌학교’에 출연했던 태국 출신 나띠가 솔로 데뷔하기도 했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태국은 한류 호감도도 높고 일찍부터 개방해 자유주의 성향도 강하고,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아이돌 문화에도 익숙한 편”이라며 “무엇보다 이슬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와 달리 여성의 연예 활동이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블랙핑크가 출연하는 광고를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김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국적 걸그룹의 동아시아 활동과 관련, “최근 중국의 BTS 불매운동에서 보듯 이 지역의 민족주의적 변수는 여전히 위험요소”라면서도 “다만 트와이스나 아이즈원의 성공을 보면 점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문화의 분리 움직임도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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