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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처럼 산 구조사' 때려 숨지게 한 구조단장…검찰, 살인 혐의 기소

중앙일보

입력

검찰, 살인 고의성 있었다 판단

응급구조사가 사망하기 한달 전 쯤 단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모습. JTBC

응급구조사가 사망하기 한달 전 쯤 단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모습. JTBC

검찰이 지난달 24일 경남 김해의 한 사설응급구조단에서 부하직원인 응급구조사를 때려 숨지게 한 구조단장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당초 경찰은 이 단장을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이 보강수사를 벌인 결과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창원지검, 김해 한 사설응급구조단장 구속기소

 창원지검 여성·강력범죄 전담부(부장 김원지)는 18일 “응급 구조사 B씨(44)를 12시간 넘게 폭행하고 9시간 넘게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사설응급구조단장 A씨(43)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시쯤 김해의 한 사설응급구조단 사무실에서 부하직원인 B씨(44)를 주먹과 발로 장시간 폭행한 혐의다. 이어 거동이 불가능한 B씨에 대해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9시간 넘게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방치해 25일 오전 10시 30분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하루 전인 지난달 23일 B씨가 낸 차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해 A씨가 불만을 품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폭행 현장을 녹음한 음성파일에서 A씨는 “너 같은 XX는 그냥 죽어야 한다”, “너는 사람대접도 해줄 값어치도 없는 개XX야”라고 말하며 여러 차례 B씨를 때렸다. 그런 뒤 A씨의 폭행으로 B씨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 뒤 “팔로 막아?”, “안 일어나”, “열중쉬어, 열중쉬어”, “또 연기해”라는 A씨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B씨는 그때마다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울먹인다.

지난달 25일 숨진 응급구조사가 폭행을 당한 뒤 구급차에 태워져 자신의 집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 JTBC

지난달 25일 숨진 응급구조사가 폭행을 당한 뒤 구급차에 태워져 자신의 집으로 이동하기 직전의 모습. JTBC

 폭행 이후 A씨 부부 등의 행동도 상상을 초월한다. A씨 등은 구타를 당해 몸을 가누기도 힘든 B씨를 사무실 바닥에 방치한 채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 뒤 이들은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 B씨를 구급차에 태워 B씨 집 쪽으로 이동했다. 사무실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보면 B씨는 구급차 안에서 거의 의식이 없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A씨 등은 경찰에서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 B씨를 흔들어 깨웠으나 일어서지 못하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고, B씨가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 구급차로 이동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후 B씨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A씨 등의 경찰 진술이다. 경찰은 부검 등을 통해 사망시간을 25일 오전 10시 30분쯤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A씨 등은 B씨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으로부터 7시간이 지난 25일 오후 5시 30분쯤에야 119에 신고를 했다.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B씨가 사망한 뒤 7시간 동안 사건 현장 등을 비추고 있던 사무실 CCTV 3대와 이들이 B씨 사망 후 대화를 나눴던 인근 식당 내 CCTV 2대, B씨 집에 설치된 CCTV 2대의 메모리 칩 등이 모두 사라졌다. A씨의 지시로 메모리칩 등을 수거해 모두 폐기했다는 것이 A씨 부인과 본부장 등의 진술이다. A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서는 “내가 때리긴 했지만 죽인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다른 동료 직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하루 전 폭행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A씨와 함께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입건된 부인 등 3명에 대해서는 증거인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B씨의 한 동료는 경찰에서 “B씨가 진짜 노예, 염전 노예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B씨 주변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A씨가 장기간 B씨와 주종관계를 형성하며 상습적으로 폭행과 학대 등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부인과 본부장 등은 ‘A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어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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