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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리스크 벗나, 다시 수감되나…오늘 이재용 ‘운명의 날’

중앙일보

입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공여 등에 파기환송심 선고가 18일 오후 2시 5분 열린다. 2017년 1월 12일 이 부회장이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소환된 지 1468일 만이다.

이 부회장과 삼성으로선 지난 4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에 마침표를 찍고 ‘뉴 삼성’으로 도약할 발판이 될지, 다시 발목이 잡힐지 결정짓는 ‘운명의 날’인 셈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유·무죄에 대한 판단 없이 양형만 심리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한 상태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재용 부회장 재판 일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5년→집행유예→파기환송심 선고는?  

앞서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018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8월 뇌물 액수를 87억원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뇌물의 출처가 회삿돈이라는 점에서 횡령액이 87억원이 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년을 초과하는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원칙적으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지난 14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뇌물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중형을 받은 만큼, 이를 제공한 이 부회장 역시 실형을 피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준법감시위 실효성 판단이 관건  

변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양준영)는 2019년 첫 공판에서 준법감시위의 실효성 여부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감경 사유로 반영한다면, ‘작량감경’에 의해 형량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해 7월 제도 운영 및 개선사항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해 7월 제도 운영 및 개선사항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징역 6년 이내로 선고하고 작량감경을 적용한다면 형량이 3년 이하로 줄여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은 4년 넘게 끌어온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으로선 ‘뉴 삼성’ 만들기에 속도를 낼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인공지능(AI)·반도체·스마트폰에 이어 전장(자동차 전자장치)·바이오 등 다방면에서 광폭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인재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2월 1년여의 구속에서 풀려난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 후 첫 행보도 인재 확보였다. 유럽과 미국‧캐나다 등을 방문해 AI 석학을 영입하고, 이들 지역의 대표적인 이동통신업체 경영진과 접촉했다.

반도체 ‘영토 확장’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대만 TSMC가 주도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입지가 상대적으로 열세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반도체 사업장에서 첫 경영 행보에 나선 이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일 경기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재구속 되면 성장엔진 확보 차질 우려

최악의 상황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된 2018년 2월 이후 1079일 만에 다시 수감되는 것이다. 자산 414조원대(2019년 기준·공정거래위원회) 국내 1위 대기업이 다시 한 번 ‘총수 부재’라는 악재를 떠안게 된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뒤 홀로서기로 경영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이 부회장이 재수감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경쟁력과 성장동력 확보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삼성과 재계의 우려다.

당장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 133조원 투자부터 삐걱댈 수 있다.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강행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바이오·가전 등 글로벌 1위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업도 힘이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중소·벤처업계 “이 부회장 선처” 탄원  

대기업과 중소기업·벤처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삼성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15일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사법부에 제출했다. 박 회장은 “삼성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무게감을 생각할 때, 그에게 기회를 주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탄원서를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기업인을 위해 탄원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역시 이 부회장을 선처해달라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김 회장은 탄원서에서 “삼성은 고(故) 이건희 회장 때부터 중소기업연수원 건립·정보화 투자 등을 지원했고, 최근에는 중소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공장 구축사업 등을 선도해왔다”며 “대·중소기업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모범적으로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박형수·최현주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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