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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공유 5년전 속기록엔···산업부 "소련 계획경제나 하던 일"

중앙일보

입력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몇 가지 정책의 조합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한 매력이 있어야죠.”

14일 기자들과 마주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이 제기한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핵심이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에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코로나 불평등 해소 TF(단장 홍익표)에 맡겼다”고 했지만 이날도 야당의 반발은 계속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생각을 깊게 안하고 얘기한 것으로, 발상 자체가 유치하다”며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힘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정의당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낙연발 이익공유제 논란은 그 개념적 뿌리인 협력이익공유제를 둘러싼 2016년의 갑론을박을 그대로 닮았다. 20대 국회 당시 김경수(민주당)·조배숙(민주평화당)·심상정(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이익공유제를 제도화하자는 법안을 쏟아냈다. 제대로된 토론은 2016년 11월8일 소위원회에서 딱 한 번 열렸다.

① “수혜-피해 어떻게 가르나”

당시 회의에 참석한 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누가 어떻게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옛날 소련에서 계획경제상의 가격을 설정하는 것처럼 복잡한 수식과 산식이 있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며 이익공유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대기업이 몇차 협력업체까지 이익을 나눠야 하는지, 나눈다면 각 협력업체가 이익에 기여한 몫은 어떻게 계산할지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하며 내놓은 말이다. 정 차관은 “맨 앞에 있는 대기업부터 맨 끝단에 있는 가내수공업체까지 이익을 나눠야 하는데 이런 것을 정부나 법이 기준을 세우는 것은 우리 경제체제 내에서는 적정하지 않다는 게 산업부 입장이다”고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모범사례 현장으로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았다. 이 대표는 온라인몰에서 미리 구매한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받았다. 이렇게 하면 본사 온라인몰은 오프라인 매장에 이익을 공유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코로나 이익공유제의 모범사례 현장으로 서울 영등포 지하상가 내 '네이처컬렉션'을 찾았다. 이 대표는 온라인몰에서 미리 구매한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받았다. 이렇게 하면 본사 온라인몰은 오프라인 매장에 이익을 공유한다.

이를 한시적인 형태로 변용한 ‘코로나 이익공유제’을 만들 때도 첫 관문은 코로나19의 수혜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일이다. 같은 사업과정에서 이익을 본 대기업과 납품하는 협력업체로 구분하는 협력이익공유제의 경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2일 “이익공유제는 방역조치로 인해 누구는 영업을 하고 누구는 못하게 되는 기준에 대한 불만에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수혜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이라면 또 다른 시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익을 공유한 기업에 혜택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애매하다는 문제도 여전하다. 이익공유의 방식으로 물량확대, 기술지원, 판로보장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방식도 거론되고 있어서다. 당시 정 차관은 “성과가 금전적으로 딱 나타나면 과세하기가 되게 편한데, 객관적으로 측정해서 공정하게 조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이훈 의원은 이미 시행중인 성과공유제의 실태를 언급하며 “이미 예정돼 있던 납품단가 인하를 조금 해주고 혜택을 받겠다고 신고하는 사례도 많다”며 “이익공유제가 갖고 있는 디자인상의 문제, 사적 계약의 부분 등은 더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② 헌법상 사유재산권 침해…”통상 마찰로 번질수도”

그날 소위에선 사유재산권을 침해 가능성을 둘러싼 날선 공방도 벌어졌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주장과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사전에 이익공유 계약을 맺으면 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정만기 전 산업부 1차관. 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정만기 전 산업부 1차관. 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정만기 전 산업부 1차관: “이것은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걸로 판단이 됩니다.”
조배숙 전 민주평화당 의원: “차관님 얘기를 들으면 전경련 얘기를 듣는 것 같아 가지고.”
정만기 전 산업부 1차관: “아니 이것은 경제 원칙에 관한 문제지요, 대기업 보호하려는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남이 실현한 이익을…”
송기헌 민주당 의원: “그러니까 왜 헌법에 위반 되는지를 말씀해 보시라고요.”

코로나 이익공유제에는 이미 거래관계가 있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서처럼 이익공유 계약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난점도 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가 “꼭 협력하지 않은 관계라도 코로나19로 호황을 누렸다면 이익을 공유하자”(이낙연 대표실 관계자)는 주장이라서다. 당시 산업부는 “이익공유를 한 기업에 외국 주주가 있다면 이들은 자기 이익을 불공정한 배분 방식으로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 기재부 설득이 최종 관문

민주당은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기업 참여를 유인할 주요 수단으로 세제 혜택을 거론한다. 조세특례제한법이나 지방세특례제한법을 고쳐야 가능하단 이야기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등에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한 줄 넣는 것만으론 제도가 작용할 수 없다. 조세특례제한법 등은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개정하기 어렵다.

당시 소위에서도 협력이익공유제를 위한 조세감면 특례를 넣는 문제가 등장하자 정 차관은 “제가 공무원 생활을 30년 해 오면서 이런 경우가 되게 많았는데 결국 기재부가 반대하면 매년 싹 정리된다”면서 “조세감면 조항을 우리 같은 진흥부처에서는 정말 넣고 싶은데 또 정리될 것들을 미리미리 우리가 규정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미 법으로 시행 중인 성과공유제 역시 기재부의 반대로 조세감면 혜택이 없다. 2012년 시작한 성과공유제는 매년 신규 도입기업이 줄고 있는데(2012년 77개→2017년 23개), 2018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이 거래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과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면 약속한 만큼 성과를 나누는 제도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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