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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어부지리? 대형 로펌 큰 시장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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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이후 대형 로펌(법무법인)을 중심으로 관련 법률 자문을 노린 움직임이 활발하다. 변호사들은 “기업주의 구속 여부가 걸린 만큼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CEO 구속 막는 데 사활 걸 것” #로펌들 TF 꾸려 대응방안 논의 #노동팀·기업자문팀 분리 운영도 #개인비리와 달리 공금 투입 가능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율촌은 최근 중대재해법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고용노동부가 자문하는 조상욱 변호사를 TF 팀장으로 선임했다. 율촌은 오는 19일 온라인 세미나를 열어 중대재해법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법무법인 세종에선 노동팀과 GA팀(정부 관련 업무팀)이 동시에 활동을 시작했다. 세종 관계자는 “실제 사건의 대리인 역할과 법률 개정 동향과 관련한 자문을 함께 수행한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세종은 국회가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킨 직후 “경영책임자 의무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의견을 냈다. 한 경영단체 관계자는 “기업이 나서서 할 수 없는 말을 (세종이) 대신해주면서 신뢰의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화우에서도 노동팀과 기업자문팀이 각각 활동을 시작했다. 화우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영문 설명서를 만들어 외국인 투자자도 공략하고 있다. 화우 관계자는 “경영자뿐 아니라 노동자도 의뢰인이 될 수 있다. 노사 양측 시각에 적합한 (법률) 자문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인사노무그룹이 만든 중대재해법 분석 문건을 최근 공개했다. 태평양은 법률 내용을 분석하고 사업장에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김앤장과 광장 등도 기업 반응을 살피며 관련 법률 서비스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고정 고객이 다른 로펌에 비해 많기 때문에 대외적인 메시지를 아직 내놓지 않았다. (중대재해법에) 신경 쓰는 분위기는 다른 곳과 똑같다”고 말했다.

로펌들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수입원으로 본다. 앞으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업 경영자가 형사 처벌 대상에 오르는 일이 생기면 대형 로펌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는 개인 비리가 아니어서 경영자가 회삿돈으로 변호인을 선임할 때 별로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변호사들은 보고 있다.

한 중견기업 법무담당자는 대기업 총수급이 경찰이나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입회하면 시간당 80만~100만원을 받는다는 게 ‘정설’이라고 전했다. 그는 “중소·중견기업 CEO가 이 법(중대재해법) 때문에 수사기관에 불려가면 변호인은 시간당 50만원쯤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선 ‘엉뚱한 곳에 시장이 열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법원의 중대재해법 관련)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모호한 규정에 대한 자체 대응이 어렵다”며 “작은 회사들은 사장이 구속되면 (회사) 운영이 멈추기 때문에 대형 로펌을 써서라도 위기를 벗어나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전문 경영인을 둘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사주가 구속되면 회사 운영도 멈추고 피해 보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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