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 소송 14일 결론···8000억 손에 쥘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두산인프라코어의 덤프트럭.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코어의 덤프트럭.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그룹이 사모펀드가 두산인프라코어를 상대로 8000억원대의 매매대금 지급 청구소송에 대한 14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두산은 대법원 선고 결과에 따라 8000억원의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어 두산인프라를 현대중공업에 매각해도 재무구조 개선용으로 한 푼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는 1심에서는 승소, 2심에서는 패소했다.

中 사업 확장하다 투자자에 발목 잡혀   

소송의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인프라는 1994년 중국에 DICC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필요한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두산은 당시 “3년 안에 중국 증시에 DICC를 상장(IPO)해 투자금을 회수할 것"이라며 투자자를 모았다. 그 결과 사모펀드 등에서 3800억원을 투자받았고, 두산은 그 대신 DICC 지분 20%를 넘겼다.

하지만 두산은 계획한 시한 안에 IPO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러면서 두산이 투자자한테 내걸었던 ‘IPO에 실패하면 투자자가 두산 지분 80%도 함께 시장에 팔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놓고 양측의 분쟁이 시작됐다. 두산이 투자를 유치하며 투자자들이 비상장 회사의 소수 지분을 시장에 팔면 제값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영권이 있는 지분과 묶어 팔아 투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Drag Along)’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공사용 특수장비 '텔레스코픽 디퍼'.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지하철 공사용 특수장비 '텔레스코픽 디퍼'. 사진 두산인프라코어

투자자들은 DICC의 새 주인을 찾겠다며 인수 희망자에게 보여줄 두산인프라의 내부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두산인프라는 “인수 희망자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부자료를 다 보여주면 기밀 유출 우려가 있다”며 자료 공개 범위를 줄였다. 이에 투자자들은 “두산이 약속을 어기고 매각을 방해한다”며 2015년 소송을 제기했다.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방해하고 있으니 DICC 20% 지분을 두산이 8000억원에 사 가라는 주장이다.

법원의 1·2심 판결 엇갈려 

1심은 두산이 이겼다. 서울중앙지법은 인수희망자가 두산 측에 비밀유지협약 자료를 사전에 제출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두산이 펼친 ‘인수할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은 “매수 희망자의 진정성은 입찰서 심사 단계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투자소개서도 받기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투자자 측이 비밀 약정서 제공 의사도 밝힌 적이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대한 두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9년 법원의 날 기념식. 맨 앞줄 왼쪽에 선 김재형 대법관. 뉴스1

2019년 법원의 날 기념식. 맨 앞줄 왼쪽에 선 김재형 대법관. 뉴스1

최종 판단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의 몫이 됐다. 기업 인수 합병(M&A) 업계에선 ‘인수 희망자의 진정성’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과 동반매도청구권 행사의 재량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 주목하고 있다. 두산은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각종 시나리오에 따른 대비를 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판결에 두산인프라 가격도 달라질 듯

두산이 최종 승소하더라도 10년 전 투자자에게 약속했던 IPO 실패에 따른 동반매도청구권은 그대로 유효하다. 이 때문에 두산인프라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중공업이 새 주인이 되더라도 중국 내 자회사가 없는 두산인프라를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 같은 변수는 두산과 현대중공업의 두산인프라 가격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또 두산이 지면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할 빚 8000억원이 생긴다. 투자은행(IB)에선 두산이 그룹 차원에서 이 돈을 조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두산인프라의 매각 불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두산 그룹에 짐을 넘기려 할 것이란 분석에서다. 이에 대해 두산은 "두산인프라 매각과 관련한 구체적인 조건·방안·절차 등은 현대중공업과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na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