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학대’를 아시나요…아동학대 의심신호 ‘방임’

중앙일보

입력 2021.01.12 17:23

업데이트 2021.01.12 17:45

[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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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때려야만 학대인가요. 아이를 혼자 두는 것도 엄연한 아동학대입니다.”

“어릴 때 엄마 찾아 집 나간 기억은 누구나 있잖아요. 보호자의 부주의가 아쉽지만, 학대라고 마녀사냥 하지 맙시다.”

아이가 홀로 집 밖에서 발견됐다면 부모는 아동학대를 저지른 것일까. 지난 8일과 10일 서울 강북구에서 연이어 발생한 이른바 ‘내복 아이’ 사건을 둘러싸고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높아진 경각심 때문이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방치된 아이들을 학대아동으로 봐야 하는 지를 짚어봤다.

“소리 없는 학대(silent abuse)”

지난 8일 오후 6시 2분쯤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의 엄마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CCTV 편의점 제공]

지난 8일 오후 6시 2분쯤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의 엄마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CCTV 편의점 제공]

혹한의 날씨에 발견된 ‘내복 아이’ 사례를 놓고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동방임(child neglect)’의 유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방임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방임은 ‘소리 없는 학대(silent abuse)’라고도 불린다”면서 “신체적인 학대처럼 폭력적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호자가 아이를 버려두거나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엄연히 아동학대인 방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부득이한 사정, 훈육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에 다수의 아동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아동학대”라고 강조하면서다. 지난 8일 강북구 우이동에서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4세 여아 사건이 한부모 가정의 안타까운 사정으로 알려지는 것도 우려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처한 상황보다 부모의 사정을 더 심적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동방임 = 처벌’ 인식은 주의해야

아동방임의 개념 및 유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아동방임의 개념 및 유형.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러나 전문가들은 “방임이 아동학대라는 것과 방임으로 인해 보호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익중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은 이슈가 커지면 모든 관심이 처벌의 수준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가해자가 곧 보호자인 아동 관련 사건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동복지법상 방임에 해당하는 학대 행위를 할 경우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정 교수는 “아이를 방임했던 부모들도 교육과 훈련, 상담, 치료 등 적절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무턱대고 부모를 처벌할 것이 아니라 면밀한 조사를 거쳐 방임의 정도가 크지 않다면 올바른 양육을 가로막았던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이동 4살 아이 사건도 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친모가 아이를 적절히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살펴보는 사례 관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방임은 신호, 조기 발견이 중요”

아동방임에 대한 낮은 인식뿐만 아니라 관련 법 제도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행법 조항은 아동방임에 관해 ‘소홀히 하는 행위’를 명시하고 있으나 ‘소홀’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정익중 교수는 “아동학대와 관련한 법 규정들이 대체로 애매모호한 기준을 둔 경우가 많다”며 “법 규정이 모든 현실을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명확한 하위 세부 규정이 없다 보니 여전히 ‘잠깐이면 그럴 수 있지’ ‘아이 혼낼 때 그 정도야’라는 과거의 인식이 만연하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아동방임의 유형을 ▶물리적 방임 ▶교육적 방임 ▶의료적 방임 ▶유기로 구분하고 있다. 미국은 아동의 피해 정도에 따라 ‘가벼운·중간·심각한’ 세 단계로 구분하고, 방임의 유형을 ▶신체적 방임 ▶의료적 방임 ▶부적절한 보호 ▶환경적 방임 ▶정서적 방임 ▶교육적 방임 ▶신생아 약물 중독 등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정 교수는 “방임에 대한 논란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며 “이에 발맞춰 관련 규정도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선아 교수는 “방임은 아이가 위험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에 해당한다”며 “학대냐 아니냐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험에 노출된 아이를 조기에 발견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연에 기대어서가 아니라, 조기에 방임을 발견할 수 있는 제도와 한번 방임에 노출된 아이를 이후에도 부모 곁에서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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