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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트럼프 입막기…'앙숙' 메르켈도 "표현 자유 제한, 문제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의회 점거 사태 여파에 트위터,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잇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극렬 지지층에 대한 제재에 나서면서 또 다른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누가 온라인에 머무르고, 누가 퇴출당해야 하는지 '빅테크' 기업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다.

앞서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의회 난입 사태와 폭력을 선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거대 소셜미디어업체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치 않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까지 나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메르켈 총리는 독일 주재 미군 방위비 문제, 난민 처우 문제 등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 대립해왔다. [AP, EPA=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메르켈 총리는 독일 주재 미군 방위비 문제, 난민 처우 문제 등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 대립해왔다. [AP, EPA=연합뉴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 수석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입법기관에 의한 제한은 받을 수 있지만, 특정 회사의 조처에 따라 제한돼서는 안 된다”며 “메르켈 총리는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이 영구 정지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7일 메르켈 총리는 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해 “그 장면들은 나를 격분하고 슬프게 만들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의심을 부추겨 폭력 사태의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정치인의 발언 자체를 자의적으로 막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날 클레망 본 프랑스 외교부 유럽 담당 국무장관도 “민간기업이 이와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피즘’ 지우기 나선 빅테크 기업들  

트위터가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가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롯해 극우주의자들의 새로운 온라인 집결지로 떠오른 '팔러'. 애플, 구글은 팔러 앱에 대한 유통을 전면 금지했다. [팔러]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롯해 극우주의자들의 새로운 온라인 집결지로 떠오른 '팔러'. 애플, 구글은 팔러 앱에 대한 유통을 전면 금지했다. [팔러]

초유의 미 의회 난입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극렬 지지자들에 대한 빅테크 기업(대형 기술기업)들의 ‘흔적 지우기’ 작업이 한창이다.

트위터는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realDonalTrump)을 일시 정지시킨 이틀 뒤 곧바로 “추가적인 폭력 선동 위험성을 고려해 계정을 영구적으로 정지시킨다”고 발표했다. 트위터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일시 정지한 페이스북은 11일 ‘선거 도둑질을 중단하라’(stop the steal)는 문구가 포함된 콘텐트를 자사 플랫폼에서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즐겨 쓰는 구호다.

빅테크 기업들의 제재가 쏟아지며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새로운 소통 창구를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들은 또다른 소셜미디어(SNS) ‘팔러’로 망명을 시도했다. 이에 팔러가 '큐어넌'(QAnon), '프라우드 보이스' 등 극단주의 세력의 근거지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자 곧 구글과 애플이 팔러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를 차단했다. 아마존 웹서비스(AWS)도 자사의 인터넷 서버를 통한 팔러 접속을 차단했다. 팔러를 인터넷에서 아예 찾아볼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팔러 측은 즉각 AWS와 소송전에 돌입했다.

"트럼프 밉지만…새로운 리바이어던 우려" 

이런 기업들의 조치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선 표현의 자유도 일정한 상황에선 제한할 수 있고, 폭력과 갈등을 부추기는 게시물에 대해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며 이를 옹호하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애리 플라이셔는 11일 폭스뉴스(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트위터와 빅테크 기업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며 “이 조치는 오히려 그들(트럼프 지지자들)을 극단화시키고, 미끄럼틀처럼 우리 모두를 더 나쁜 상황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날 미국의 저명한 헌법학자인 제드 루벤펠드 예일대 교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트럼프 계정 및 콘텐츠 차단 문제는 민간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통제받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무소불위의 괴물)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이는 (입법·사법·행정의) 세 갈래 가지로 구성된 연방정부에 `실리콘밸리 지사`라는 새로운 가지가 추가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의사당 습격으로 야기된 (시민사회의) 공포에 대한 해답은 대화의 채널을 닫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대화 채널을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의사당 로툰다 홀을 점거한 시위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의사당 로툰다 홀을 점거한 시위대. [EPA=연합뉴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트럼프의 메시지가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인은 정치적으로 심판받는 것이다"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트럼프에 대한 기업들의 잇따른 강경 조치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통신품위법 230조를 개정해 빅테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사용자들이 올린 콘텐트에 대해 소셜미디어 업체에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면책권을 인정해준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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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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