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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공무원도 아닌데…한파 속 선별진료소 지키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 앞. 영하 11도 안팎의 추위에도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두꺼운 롱 패딩 위에 방역복을 껴입은 이승우(57)가 추위와 싸우며 이들을 안내했다. 이씨는 의료진도, 공무원도 아닌 민간 자원봉사자다.

10일 오전 11시 이승우(57)씨가 서울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접수 및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정진호 기자

10일 오전 11시 이승우(57)씨가 서울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접수 및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정진호 기자

한파에도 문 열자마자 검사받으러

오전 11시부터 운영을 시작한 임시선별검사소 앞엔 문을 열기 전부터 5명가량의 시민이 줄을 서 기다렸다. 문을 열고 1시간 동안 30여명의 사람이 차례로 검사를 받았다. 이씨는 손 소독제 사용과 일회용 장갑 착용을 안내하고 휴대전화 번호 기재 등 접수를 도왔다. 익명 검사다 보니 휴대전화 번호를 잘못 얘기하거나 다른 사람의 번호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사자 확인까지 하는 것도 이씨의 업무 중 하나다.

이씨는 입구에서 검사받으러 온 시민에게 인사를 건네며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도 했다. 외국인 4명이 함께 검사를 받으러 오자 이씨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웃으며 물었다. 또 “뒷사람과 거리를 두고 들어오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검체 채취가 많이 아프냐”고 묻는 시민에게 그는 “아프진 않고, 눈물 찔끔 나는 정도”라고 농담을 건네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씨 "긴장 풀어주는 것도 내 일"

광진문화원에서 일하는 그는 “어떤 보람을 느끼려는 것보다도 작은 도움이라도 나누기 위해 봉사를 한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조금이라도 빨리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검사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사받으러 오는 사람 대부분이 긴장한 채로 오는데 대화하면서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며 "검체 채취를 하는 의료진이 고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절하게 안내하고, 긴장 풀어주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씨가 처음 검사소에서 봉사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이 컸다고 한다. 검사소에 확진자가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이씨는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담담히 답한다.

5일 부산 기장군 장안산단 내 구기공원에 설치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근로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송봉근 기자

5일 부산 기장군 장안산단 내 구기공원에 설치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근로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날 검사를 받은 이모(28)씨는 “입구에 있던 분이 자원봉사자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며 “회사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왔지만, 걱정이 많았는데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해줘서 편하게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사람 없자 "내가 하겠다" 

지난해 12월 25일 대학생 박강산(27)씨가 서울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접수 및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박씨 제공]

지난해 12월 25일 대학생 박강산(27)씨가 서울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접수 및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박씨 제공]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엔 건국대에 재학 중인 박강산(27)씨가 광진구 임시선별검사소 봉사를 맡았다. 박씨는 “크리스마스라 근무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일부러 그날 자원봉사했다”며 “또래 청년들이 코로나19나 방역에 무감각한 측면이 있었는데 코로나19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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