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공수처법이 입법 독재로 강행 처리되고 나서 처음에는 그만두려고 했었다.”
7일 서울행정법원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의결 효력 집행정지’ 심문기일을 마치고 나온 야당 측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인 이헌 변호사가 한 얘기다. 이 변호사는 “제가 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한 이유는 야당 비토(veto·거부)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비토권이 없어진 이상 사법부 판단을 받아 의결을 무효화시키는 것 외에 방법이 남아있지 않아 그만두지 않고 오늘 이 법정에 서게 됐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안종화)는 오후 3시쯤 야당 측 추천위원 이헌 변호사와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첫 재판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야당 추천위원들이 추천위가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했다며 추천 무효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낸 데 따른 조치다. 집행정지 결과에 따라 공수처 출범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법원 판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수처 ‘독재수사처’ 돼선 안 돼”
심문에는 소송 신청인인 이헌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대리인 4명과 피신청인인 조재연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장 측 법률대리인 2명 등이 참석했다. 심문은 한 시간가량 비공개로 진행됐다. 심문을 마치고 난 뒤 이 변호사는 “소송 유형이 이례적이라 이 부분을 두고 법리 다툼이 있었다”며 “(피신청인인) 추천위원장 측은 의결이 행정처분이 아니니까 집행정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위원회 의결이 행정처분인 건 행정 법학에서 기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논의의 장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공수처법 개정 이유가 신속한 공수처 출범을 위해서라고 되어있는데 공수처 설치를 바라는 분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적 생각이겠냐”며 “공수처가 ‘독재수사처’가 될까 봐 걱정하는 분들의 의견이 대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왜 (이분들 생각이) 의결 과정에서 반영이 안 돼야 하느냐. 저는 그분들을 위해 야당 측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이 됐고 그게 사명감이자 책무였다”고 말했다.
법원, 공수처 출범에 제동 걸까
재판부는 김진욱 공수처장 후보자 등 최종 후보 2인 추천의결 및 추천과정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했는지와 의결 효력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검토해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다만 이 변호사 측에 따르면 재판부가 결론을 언제 내릴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법원이 야당 측 추천위원의 신청을 받아들여 집행정지를 결정하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결정은 본안 소송 전까지 효력을 잃게 돼 김진욱 공수처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절차에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
공수처법 위헌심판 신청도
앞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6차 회의를 열고 위원 7명 중 5명의 동의로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공수처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회의에는 7명 전원이 참석했지만 최종 표결엔 5명만 참여했다. ‘적합한 후보자를 찾기 위해 더 논의하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야당 측 추천위원 2명이 반발해 퇴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의결정족수를 6명에서 5명으로 낮춘 개정 공수처법에 따라 최종 후보는 야당 측 위원 동의 없이 의결됐다.
이틀 뒤인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공수처장 후보에 김진욱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에 반발한 야당 추천위원들은 김 선임연구관과 이 부위원장의 공수처장 후보 의결과 추천에 대해 무효를 확인하는 본안 소송과 함께 의결·추천에 대한 효력을 멈춰달라며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집행정지는 본안 소송 판결에 앞서 신청인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와 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될 때 행정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이다. 아울러 지난 5일에는 개정 공수처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