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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빨아먹고 사는 것들아”··· 겨우살이 보고 안 ‘인간의 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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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해발 1300m 지점에서 발견한 겨우살이. 육지의 겨우살이는 열매가 노란데, 제주도 겨우살이는 열매가 빨간 것도 있다. 손민호 기자

한라산 해발 1300m 지점에서 발견한 겨우살이. 육지의 겨우살이는 열매가 노란데, 제주도 겨우살이는 열매가 빨간 것도 있다. 손민호 기자

겨울 산에서만 보이는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겨우살이’다. 우연히 겨우살이를 발견하면, 동전이라도 주운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계절에는 안 보이던 녀석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그만큼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이름과 달리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사는 나무가 아니다. 1년 열두 달 산다. 다만 겨울에만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녀석 잘못은 아니다. 겨우살이는 원래 살던 데서 원래 살던 대로 살았을 뿐이다. 문제는 세상이다. 이 녀석이 뿌리를 내린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다. 참나무 같은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의 똥을 매개로 다른 나무에서 싹을 틔운다. 광합성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양분 대부분은 숙주가 되는 나무에서 얻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날, 그러니까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계절이 돌아오면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던 겨우살이가 나타난다. 사람 눈에 비로소 띄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걸 안다고 했던가. 그 유사 사례가 겨우살이다. 그러니까 겨우살이는, 철저히 인간의 시선이 투영된 이름이다.

겨우살이는,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의 배설물을 통해 번식한다. 배설물에 섞인 씨앗이 다른 나무의 가지에 들러붙어 싹을 틔운다. 그래서 겨우살이는 주로 한 나무에 군락을 이루고 산다. 손민호 기자

겨우살이는,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의 배설물을 통해 번식한다. 배설물에 섞인 씨앗이 다른 나무의 가지에 들러붙어 싹을 틔운다. 그래서 겨우살이는 주로 한 나무에 군락을 이루고 산다. 손민호 기자

참나무 입장에선 제 양분 빼먹는 얄미운 녀석이겠으나, 인간 입장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존재다. 하여 유럽에선 행운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고대 유럽 제사장이 겨우살이를 제물로 썼다고 하고, 요즘도 북유럽에선 성탄절 날 겨우살이를 문에 걸어둔다. 액운을 몰아내는 기능은 확인할 길 없어도 인체에 유용한 기능은 여러모로 인정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우살이는 약으로 쓰인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다. 겨우살이의 숙주가 되는 나무는 생장 속도가 느리고 수명도 짧다.

어느 날 세상이 변했다. 인간이 살던 방식은 그대로인데, 인간이 비벼대고 사는 세상이 변했다. 어쩌다 인간도 맨몸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의미한 연명의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인류가 긴 세월 지향했던 가치는 유보되거나 부정되고 있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할지 모르겠다. 생존은 본래 비루한 것이라고. 겨우살이에 새똥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겨우살이는 세상이 달라져도 달라지는 게 없다. 인간은 아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인간도 달라져야 한다. 세상 빨아먹고 사는 건, 겨우살이나 인간이나 똑같지만.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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