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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밟아도 200m 쭉~ 수백명 앗아간 죽음의 얇은 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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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 2터널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의 잔해들. [연합뉴스]

지난해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 2터널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의 잔해들. [연합뉴스]

#. 지난해 2월 17일 전북 남원시 인근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완주방향)에서 차량 32대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사고 와중에 질산을 실은 탱크로리가 넘어지고, 뒤이어 오던 트럭들이 추돌하면서 화재까지 발생해 피해를 키웠다.

5년간 겨울 고속道 사고 248명 숨져 #도로 결빙에 과속 더해져 피해 키워 #시속 100㎞땐 정지까지 204m 주행 #빙판길선 감속, 안전거리 확보 필수

 #. 2019년 12월 14일 새벽에는 경북 군위군의 상주영천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화물차 등 차량 10대가 추돌해 6명이 목숨을 잃고, 14명이 부상했다. 또 거의 같은 시각 인근 하행선에서도 20여대가 연달아 부딪혀 한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사고는 채 치워지지 않은 눈과 도로 결빙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과속이 더해졌다. 제설 작업을 했어도 아직 눈이 일부 남아있어 미끄럽고, 서리가 내린 뒤 기온이 떨어져 빙판길이 됐지만 상당수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린 탓에 사고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2019년 일어난 상주영천고속도로 다중 추돌사고 현장. [뉴스 1]

2019년 일어난 상주영천고속도로 다중 추돌사고 현장. [뉴스 1]

 6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19년) 겨울철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248명이었다. 도공의 김동수 교통본부장은 "다른 계절에 비해 사망자가 많지는 않지만, 겨울철 빙판길에서 한번 사고가 일어나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빙판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평상시보다 제동거리가 훨씬 더 길어지는 탓에 추돌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실험결과를 보면 시속 40㎞로 달리던 차량(중형승용차 기준)이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마른 도로에서는 8m가량 더 진행한 뒤 멈췄지만, 빙판길에선 이 거리가 26m로 3배가량 길어졌다.

 고속도로처럼 시속 100㎞가량으로 달리는 도로에선 이 차이가 더 벌어진다. 마른 도로에서는 제동거리가 42m였지만, 미끄러운 도로에선 무려 204m를 더 달려간 뒤에야 정지할 수 있었다. 빙판길에서 평상시 속도대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았다가는 앞차와의 추돌사고를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게다가 노면이 얼어있는 도로에서 급정거하게 되면 차량이 방향성을 잃고 전복될 위험도 크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빙판길 교통사고는 치사율도 마른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보다 높다. 2016~2018년 사이 발생한 교통사고를 노면 상태에 따라 분석한 결과, 마른 도로의 치사율은 1.79였다. 치사율은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다. 반면 서리가 내렸거나 결빙상태인 도로의 치사율은 2.72였다. 빙판길에서 치사율이 높은 건 도로 상태를 운전자가 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아 방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도로 결빙이 우려되거나 안개가 심하게 낀 고속도로에서는 제한속도(시속 100~110㎞)보다 50% 이상 감속해서 운행하도록 도로교통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운전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 사매 2터널 사고 때도 사고 차량 32대 중 11대가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결빙주의 표지판.

결빙주의 표지판.

 도공에서도 빙판길 사고를 줄이기 위해 상습 결빙 지점에 열선을 깔아 도로가 어는 걸 방지하거나 자동 염수살포장치 등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 열선은 가설비가 100m당 2억원이나 돼 대규모 설치가 쉽지 않다.

 김동수 본부장은 "겨울철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는 늘 결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평소보다 속도를 줄이고, 차량 간 안전거리도 더 여유 있게 확보해야만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며 "막 제설을 한 도로도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방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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