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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면' YS에 건의한 DJ, 닮은듯 다른 '이낙연 사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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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남편의 신념을 실천한 것이었요. 그이들이 저지른 죄는 나쁘지만 용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이희호 평전』에 나오는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말이다. 1997년 12월 DJ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김영삼(YS) 대통령을 찾아가 1995년 12월 구속 기소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당선 직후 기자회견(12월18일)에서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말한 뒤였다. 12월20일 YS는 두 사람에 대한 사면·복권을 발표했다.

DJ, 1997년 12월 당선 직후 사면 건의 #YS, DJ 당선 이틀 만에 전두환·노태우 사면 발표 #"정치적 부담 나눠 갖는 구조 닮은꼴" #사면 반대 여론 더 많은 건 과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20일 낮 청와대 현관에서 김대중 당선자를 맞이했다. 오찬회동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ㆍ복권을 발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20일 낮 청와대 현관에서 김대중 당선자를 맞이했다. 오찬회동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ㆍ복권을 발표했다.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접한 정치권 안팎에선 23년여 전 그때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DJ 정부 시절 청와대 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당시와 비교해 볼 수 있을만한 점이 많다”며 “당시 DJ의 건의로 YS도 사면을 결정하는 데 부담을 덜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국무총리)와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국무총리)와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측면과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 점도 당시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DJ는 1980년 내란음모 조작 사건 때 전두환 신군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피해 당사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은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과 친문 진영의 한으로 작용해 왔다. 검찰의 힘을 빌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기소는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의 핵심이었다. 김 의원은 “당시에도 전·노 두사람의 반성과 사죄가 없다는 점이 사면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며 “DJ가 YS에게 명분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도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건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큰 숙제”라며 “이 대표가 던지고 문 대통령이 받는 구조로 해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 12월은 외환위기가 본격화돼 국가부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던 시점이었다. 2020년 닥친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위기는 곧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라고 불리곤 한다. 이날 오전 현충원을 참배한 뒤 내놓은 “코로나19로 일상이 멎었지만 국민과 함께 전진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회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이 대표의 메시지가 DJ의 당선 기자회견을 연상시키는 이유다. 김 의원은 “1997년은 국가 부도가 날 수 있단 걱정이 많았던 때라 국민 통합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교가 부적절하다는 견해도 있다. DJ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전 의원은 “그땐 국민이 원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당시엔 첫 정권 교체를 하면서 대승적인 화해를 해야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면이 가능했다”면서 한 말이다. 지난해 2월 실시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여론조사(CBS 의뢰, 리얼미터 조사)에선 응답자의 56.1%가 ‘옳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장 전 의원은 "시대적 상황은 다르지만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면서 "문 대통령이 DJ처럼 대담한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태화·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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