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부부 싸움했을 때 마음의 상처 적게 받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0.12.31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6)

따뜻한 찻물 속에서 가볍게 오므렸던 매화 꽃봉오리가 천천히 만개하는 장면을 만난 적이 있는지. 그 적막을 숨죽여 바라보면 은은하게 번져오는 빛에도 무게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진 pxhere]

따뜻한 찻물 속에서 가볍게 오므렸던 매화 꽃봉오리가 천천히 만개하는 장면을 만난 적이 있는지. 그 적막을 숨죽여 바라보면 은은하게 번져오는 빛에도 무게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진 pxhere]

사랑을 우리다

그 사람이 왔을 때
마음속 모서리에 밀봉한 유리병을
비틀어 열고 우려낸 맑은 매화차

비로소 한숨이 터졌습니다

흔들리는 물결 사이로 가라앉으며
꽃봉오리에서 점차 꽃잎을 피워가는
적막을 맞잡고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엄동설한을 따고 숱한 나날을 덖었어도
침묵뿐인 이야기
야리야리한 차 향만으로도
온 세상이 따뜻해졌습니다

그의 눈 속에 어린 내 모습을 발견하곤
살며시 눈길을 피해 주었습니다

잠시 하늘의 별 가운데에 침잠하는
빛의 무게를 우려내 보았습니다

해설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과 마주쳐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회사, 국가에서도 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문제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여야 한다. 그래야 마땅한 해결책이 나타난다.

문제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점을 최대한 한 자리에 모았다가 답이 아닌 것을 하나씩 제외해 나가면 궁극적으로 가장 근접한 해결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제점을 쭉 나열하면 서로 갈등만 일으킬 염려가 있을 때 숫제 제3의 대안을 상정해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때 문제의 배후에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 찾아보려 관찰하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과 마주쳐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회사, 국가에서도 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과 마주쳐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회사, 국가에서도 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진 pixabay]

문제점을 나열해 모으는 방법을 수렴법이라 부르고, 배후를 관찰해 제3의 대안을 세우는 것을 발산법이라고 부른다. 어떤 물건의 고장이나 사건, 일을 해결하는 데에는 수렴법이 좋고, 사람 관계 문제에서는 발산법이 좋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배후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사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금세 고치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다. 부부 싸움이나 가족 간의 갈등, 회사나 사회 내에서의 정치적 알력 따위는 문제점을 나열하기보다 바로 제3의 대안을 추구하는 게 마음의 상처를 적게 받고 행복하게 사는 법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존경할만한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성철 스님 등 시대의 웃어른 노릇을 했던 분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맡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안으로 스며드는 역할을 하고 빛은 자신을 드러내어 세상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한다. 한의학적으로 소금은 음의 기운을, 빛은 양의 기운을 뜻한다. 전혀 다른 속성을 나타낸다. 어느 때는 자신을 낮추어 녹아들어야 하고 어느 때는 모든 사람에 앞에 나서서 이끌어야 한다. 둘 다 힘든 일이며 더욱이 제때에 알맞게 행동한다는 건 내공이 보통 뛰어나지 않으면 어렵다. 그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시의적절하게 운용했다. 수렴법과 발산법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일본 강점기에 뛰어난 선객이었던 혜월 스님이 선암사에 계실 때였다. 스님은 가끔 설법 중에 당신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활인검과 죽이기도 하는 사인검 두 자루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실물을 직접 보여준 일이 없었다. 천하의 명검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 무렵 그 지역을 담당하던 일본인 헌병 대장이 그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일었다. 사람을 죽이는 명검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사람을 살리는 명검이 있다니, 이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아닌가. 그 헌병 대장은 도저히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 곧바로 선암사로 올라갔다. 사람을 살린다는 활인검과 사람을 죽인다는 사인검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안으로 스며드는 역할을 하고 빛은 자신을 드러내어 세상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한다. [사진 pixabay]

소금은 자신을 녹여 안으로 스며드는 역할을 하고 빛은 자신을 드러내어 세상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한다. [사진 pixabay]

마침 혜월 스님은 산에 나무하러 가고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니 허름한 차림의 노스님이 지게에 나뭇짐을 지고 내려왔다. 바로 저 스님이 활인검, 사인검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니시는 혜월 선사라는 말을 시자로부터 들은 헌병 대장은 우선 스님의 외모를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활인검, 사인검의 명검을 지닌 선사라면 풍모부터 우선 그럴듯하리라고 상상했는데 나뭇짐을 지고 내려온 혜월 선사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스님께서 활인검, 사인검 명검을 가지고 계신다기에 그걸 구경하러 왔소이다.”
“그러신가. 그럼 보여줄 테니 나를 따라 오시게.”

혜월 스님은 섬돌 축대 위로 성큼성큼 올랐다. 헌병대장도 스님의 뒤를 따라 섬돌 축대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스님이 느닷없이 돌아서서 헌병 대장의 뺨을 후려쳤다. 헌병 대장은 순식간에 축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스님이 축대 밑으로 내려와 한 손을 내밀어 헌병 대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조금 전 당신의 뺨을 때린 손은 죽이는 칼이요, 지금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손이 살리는 칼입니다.”

오만했던 헌병 대장은 그제야 크게 깨닫고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돌아갔다. 상대가 비록 철천지원수이고 적이라 할지라도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 걸 보여주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성취해내는 건 아주 잘하지만, 그걸 행복으로 이끄는 데는 그리 유능하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은 자기가 계획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뤄내고 말겠다는 강박에 휩싸인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로 뽑혔다. 나와 우리 편은 옳고 너와 네 편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깊어졌다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점을 낱낱이 나열해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건 결국 사인검을 휘두르는 것이며 비록 적이라도 쓰려지고 넘어진 상대방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활인검을 내보이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불행에 빠져 헤맬 때 건져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매화차는 엄동설한의 추위가 미처 가시지 않았을 때 밖으로 나가 손수 꽃봉오리를 채취한다. 가녀린 꽃받침을 일일이 제거한 뒤 잘 말리고 덖어 유리병에 밀봉해 두었다가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을 때 정성껏 우려낸다. 오랜 시간에 걸친 그 수고로움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기꺼이 대접할 때 두 손에 가득 향기를 묻히는 망외의 소득과 행복을 얻는다.

따뜻한 찻물 속에서 가볍게 오므렸던 매화 꽃봉오리가 천천히 만개하는 장면을 만난 적이 있는지. 그 적막을 숨죽여 바라보면 은은하게 번져오는 빛에도 무게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상대방의 눈길에 매몰될 까닭이 없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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