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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해외 여행 동쪽으로 갈수록 시차적응 어려운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3)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나는 후유증으로 유난히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와 동남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멀리 서쪽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면 더 심했다. [사진 pixnio]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나는 후유증으로 유난히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와 동남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멀리 서쪽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면 더 심했다. [사진 pixnio]

시차 적응
한 박자 더딘 25시 생의 운율로
밤낮 12시 세상 시계에 허둥허둥 맞추다가
정년이란 긴 여행에서 돌아오다

지구에서 제일 빠른 서울 표준시
미처 귀향하지 못한 마음이 가렵다

지루한 천국보다 광란의 지옥이라고
함부로 영과 육신을 맡기고 헤매다가
너무나 많은 애달픈 사랑이 스러졌다
나의 푸른 지옥은 너의 붉은 지옥

잠을 잊고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꿈꾸는 방향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실수하고 실패해도 웃으며 함께 놀걸

괴발개발 추상화에 손뼉 치고 동시도 읽어보자
시간여행 이야기며 왜 사냐는 돌발에도 끄덕이자
그렁그렁한 아이 몸짓이 어제를 되살리고
내 구부정한 무릎 통증은 목젖마저 흔들 것이다

時差적응이 視差적응이란 걸

해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니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그중에 하나는 바쁘다고 미처 정리해 두지 못한 해외 여행 사진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그때 그 장소와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는 일이다. 내가 찍은 사진과 남이 보내준 자료를 한데 모으고 비교하면서 ‘맞아! 이런 광경과 모습도 있었네’하고 미소를 짓게 된다.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나는 후유증으로 유난히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와 동남아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멀리 서쪽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면 더 심했다. 처음엔 바쁜 일정이 만든 여독이라고 여겼는데 몇 번 되풀이 되니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시차적응 때문이라면 아무리 길어도 1주일이면 정상화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나는 전체 여행 일정보다 더 길게 시차적응을 해야 회복되었다. 유럽에 보름간 여행을 하고 오면 최소 20일 정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천근만근이었다.

해외여행 때 시차 문제로 시달리는 사람을 위해 원인과 예방법을 설명한 글을 읽어보면,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하루 주기는 25시라고 한다. 사람은 뇌에서 각종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수면과 각성주기를 맞추어준다. 이 생물학적 주기를 일주기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일주기와 지구 자전주기에 약 1시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몸의 적응력이 그만큼 더디다는 뜻이다. 적응력을 높여주기 위해서 햇빛을 쏘이거나, 식사시간을 조절하거나, 사회적인 활동 시간을 조정하면 좋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하루 주기는 25시라고 한다. 사람은 뇌에서 각종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수면과 각성주기를 맞추어준다. [사진 pxhere]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하루 주기는 25시라고 한다. 사람은 뇌에서 각종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수면과 각성주기를 맞추어준다. [사진 pxhere]

사람의 일주기가 25시로 느리기 때문에 해 뜨는 시각이 빠른 동쪽으로 여행할 때 시차적응이 더 어려워진다. 시간 격차가 평상시 1시간보다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바쁜 것보다 여유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나 서울서 미주로 갈 때 시차적응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행 방향이 동쪽이기 때문이다. 서울서 미주 여행할 때는 그나마 미리 일상생활을 조정하면 되지만, 유럽여행 중에는 어차피 객지이고 모든 게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관계로 시차적응을 준비하기가 어렵다.

그밖에 유럽 여행에서 겪은 공간적, 문화적 충격도 커서 몸과 마음이 붕 뜬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유럽은 소년 같은 생각을 하는 노인의 나라라고나 할까. 우리는 노인의 생각을 지닌 청년들의 나라처럼 보인다. 바쁘게 움직이며 ‘빨리빨리’를 외치지만, 막상 바라볼 꿈이 결여된 노인의 사회.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아이돌그룹 BTS의 멤버인 뷔(24세 본명 김태형)가 “아직 꿈이 없거나 원하는 직업이 없으면 추천해 드립니다. 꿈을 찾고 싶은 아미는 글을 올려주시지요”라고 팬 커뮤니티에 썼단다. 그러자 전 세계 수많은 아미가 답글을 달았다. 영어로 쓴 외국 아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듯했지만, 한글로 답을 단 아미는 달랐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줄 모르니 꿈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답글을 달았다.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걸 모르는데 언젠가 꿈이 생길 수 있을까요?” 등등.

꿈이란 여유를 갖고 삶의 체험을 다방면으로 익힌 다음에 생겨나는 것이다. 무조건 네 꿈을 찾으라고 권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어렸을 적 경험을 떠올리면 남자아이는 군인, 대통령, 과학자, 판검사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여자 아이는 선생님, 의사, 간호사,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라고 밝히곤 했다. 아주 획일적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는 가수, 탤런트, 배우 등 연예인과 만화가가 떴다. 요즘엔 유튜버가 뜨겁다고 한다. 개인의 꿈도 유행을 타는 셈이다. 이상하게 사업가는 드물었다.

외국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꿈이 달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제 취미는 노래 부르기입니다. 나중엔 의사가 되고 싶어요.” 평소에 자기가 무얼 잘하고, 어떤 때 행복하며, 앞으로 어떤 일에 종사해야 보람을 느낄지 질문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란다.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강요받는 우리나라 청소년과는 다르다. 부모와 주위에서 ‘스스로 질문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숱한 자문자답을 통해 얻은 답은 남과 달라도 자신에게는 귀한 의미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또 나와 다른 타인의 답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사진 pixabay]

숱한 자문자답을 통해 얻은 답은 남과 달라도 자신에게는 귀한 의미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또 나와 다른 타인의 답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사진 pixabay]

“답은 다를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린 게 없다.”
전국이 똑같은 과정을 배우는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는 1년에 학과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자기가 궁금하다며 질문을 해대면 교사가 예정한 진도를 나갈 수 없기에 다른 학생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모르는 건 학원이나 개인 과외에서 보충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준다. 그리고 교사도 어려서부터 질문과 대답을 하는 훈련이 부족했으므로 조금이라도 초점에서 벗어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을 시험하려 든다는 의심부터 한다.

서양에서는 질문하는 교육방법으로 학생을 이끄는 게 보편화 되어 있다. 동급생끼리 서로 짝이 되어 어떤 주제를 정해 질문을 주고받는 방법을 유대인은 ‘하브루타’ 교육법이라 부른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질문하지 못하면 공부를 소홀히 했다고 핀잔을 받는다. 그래서 유대인 아이는 답을 생각하기 전에 질문을 먼저 떠올린다. 숱한 자문자답을 통해 얻은 답은 남과 달라도 자신에게는 귀한 의미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또 나와 다른 타인의 답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나라 학생은 주어진 문제에 정답을 고르지 못하면 석차가 떨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오죽하면 성적을 순서를 나타내는 석차라고 부를까. 1등 외에는 나머지는 모두 낙오자가 된다. 조만간 희망과 꿈에도 석차가 있다는 말이 나올까 겁난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나도 석차 콤플렉스가 심했던 것 같다. 나는 베이비 붐 첫 세대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원까지 모두 입시시험을 치르고 진학했다. 그런데 진학률이 딱 50%였다. 각종 시험에서 한 번 이상 떨어졌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절실함이 없었던 것 같다. 한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예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교양과목으로 문학 수업을 수필가 서정범 교수에게 1년간 들었다. 글쓰기에 소질이 보인다고 지나가는 말씀처럼 하셔서 용기를 내어 응모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 본격적으로 문학수업 지도를 받았어야 했다.

아무리 꿈이라도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건 허황되다. 글쓰기는 재능으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와 손의 필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몰랐다. 왜 써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하지 못한 채 덤벼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안 되니 글쓰기를 포기하고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것도 중도하차. 건건이 시행착오를 범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덕분에 내 두 아들이 꿈을 찾아 헤매는 방황의 시간을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뒤늦게 전공을 바꾸겠다는 선언에도 놀라지 않았다.

25시라는 육체의 리듬이 지닌 시차적응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길은 좀 돌아가더라도 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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