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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법치 수호해달라" 이재용에 9년 구형한 특검의 간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1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1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열린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며 300억원 상당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지 3년 10개월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재판장)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하고, 최씨가 받은 말 ‘라우싱’을 몰수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징역 7년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는 과거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데 비해 줄어든 구형량이다.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 중 가장 형량이 높았던 재산 국외도피 혐의에 관해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해 전체 구형량이 준 것이다.

실형 vs 집행유예, 특검-이 부회장 측 공방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10차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10차 공판에 각각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중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고, 여기에 50억원의 뇌물액을 추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은 이 부회장의 유무죄보다는 양형이 쟁점으로 다뤄졌다.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은 이날 공판에서 국정농단 사건 다른 피고인의 양형을 고려해야 한다고 공방을 벌였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징역 20년, 최씨가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것을 볼 때 집행유예를 선고할 사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것과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검은 “이들에게 무조건 과도한 엄벌을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에 공헌한 바를 무시하라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가치인 법치주의와 헌법 정신을 수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만 판단하고 양정을 해달라는 게 재판부에 대한 마지막 간청”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지위와 권세를 남용해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이 부회장이나 삼성이 얻은 특혜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사기업이 공익적 요청을 앞세운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한 명분을 찾기는 어려운 점을 양형에 참작한다면 집행유예가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앞서 1심에선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선 집행유예를 받았다.

준법감시위, 양형에 얼마나 반영될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특검은 삼성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올해 2월 도입한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 요소로 반영하는 것을 두고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검이 재판부 변경을 요청하면서 한동안 재판이 공전하기도 했다.

특검은 이날도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 측에 유리한 양형 요소로 산정돼선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특검은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인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긍정적 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감경요소로서 진지한 반성은 인정하기 어려움이 쉽게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은 준법감시제도가 대폭 강화된 점이 양형에 고려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지난 5월 4세 경영 포기, 무노조 경영 중단 등을 선언했다. 이 부회장 측은 “삼성에 비판적인 인사가 다수 포함된 외부기구인 준법감시위가 준법 통제를 한다는 건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획기적 변화”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앞서 “준법감시위가 유일한 양형 요소가 아니며 가장 중요한 양형 요소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최종 결론은 재판부의 손에 달린 셈이다.

“모든 건 제 잘못” 울먹인 이재용  

이 부회장은 이날 최후 진술을 통해 “지금 같았으면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든 것이 저의 불찰, 저의 잘못, 제 책임입니다. 제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제도를 언급하면서는 “재판부께서 이재용이 어떤 기업인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는 화두를 던져주셨다”며 “준법 문화라는 토대에서 법률적 검토가 이뤄져야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특히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회장을 이야기할 때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두 달 전 영결식에서 친구분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추도사를 해주셨다”며 “저의 정신과 자세를 바꾸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거부할 수 있는 철저한 준법시스템을 만들어 직원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진정한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게 일관된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너무나도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음 달 1월 18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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