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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유산’ 원조 비빔밥집도, 58세 탁구장도 문 닫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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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주중앙회관의 과거(왼쪽)와 현재. 손해용 기자, [사진 서울시]

전주중앙회관의 과거(왼쪽)와 현재. 손해용 기자, [사진 서울시]

3대째 가업을 이어오던 서울 명동의 비빔밥 맛집 전주중앙회관이 문을 닫았다. 곱돌비빔밥을 처음으로 선보인 50년 노포(老鋪)다. 서울시가 보존 가치가 크다고 판단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할 정도로 전통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 7월 폐업신고를 했다.

3대째 가업 곱돌비빔밥 원조 식당 #70% 차지하던 외국인 손님 끊겨 #집단감염 우려에 탁구장 발길 뚝 #“반세기 신촌 사랑방 역할했는데” #강남대로 상가 공실률 16% 넘어 #“최저임금 시름에 코로나 추가 충격”

서울시·중구 등에 따르면 이곳은 명동이라는 입지와 비빔밥이라는 메뉴 덕분에 외국인 손님이 70%를 차지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극심한 영업난에 시달렸다.

 신촌 복지탁구장의 영업 종료 전(왼쪽)과 ‘코로나19로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현재의 모습. 2014년부터 이 곳을 관리해온 이윤자(70)씨는 “88세 어르신부터 대학생ㆍ직장인까지 남녀노소 편히 와 즐기던 신촌의 상징적인 곳이었다”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탁구장에 나올거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문을 닫으니 너무 안타까왔다”라고 회고했다. 손해용 기자, [사진 이윤자]

신촌 복지탁구장의 영업 종료 전(왼쪽)과 ‘코로나19로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현재의 모습. 2014년부터 이 곳을 관리해온 이윤자(70)씨는 “88세 어르신부터 대학생ㆍ직장인까지 남녀노소 편히 와 즐기던 신촌의 상징적인 곳이었다”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탁구장에 나올거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문을 닫으니 너무 안타까왔다”라고 회고했다. 손해용 기자, [사진 이윤자]

1962년에 문을 연 신촌의 명물 ‘복지탁구장’도 비슷한 시기 폐업했다. 역시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이 지역 주민과 신촌 주변 대학생의 오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여름 탁구장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다. 탁구장 관리를 맡아 온 이윤자(70)씨는 “많은 이의 추억이 깃든 사랑방 같은 곳”이라며 “탁구장 문을 닫던 날이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중고장터엔 업소용 기기 ‘떨이 세일’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위축이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을 ‘폐업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여러 방송에 소개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던 상점에 ‘폐업 안내문’이 나붙고, 주요 온라인 중고장터에는 각종 업소용 기기를 파는 눈물의 ‘떨이 세일’ 게시글이 넘쳐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름난 곳조차 이를 피하지 못할 정도다.

서울 주요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서울 주요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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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영업자의 고통은 각종 통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요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급등세다. 대표적인 오피스 밀집지역인 광화문은 지난해 4분기 3.7%에서 올해 3분기 9.3%로 올랐고, 강남의 핵심 상권인 강남대로는 같은 기간 4%에서 16.4%로 뛰었다. 보통 인기 상권에는 폐업한 자리에 금방 다른 점포가 들어서지만, 코로나19로 폐업하는 상점이 워낙 많다 보니 공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영업자 수도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기준 자영업자는 총 552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만9000명 줄었다. 지난 3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 연속 감소세다. 자영업자 감소세는 2018년 6월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월평균 감소 폭은 올해(7만6000명)가 지난해(3만2167명)보다 배 이상 많다.

올해 자영업자 증감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해 자영업자 증감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 가운데 특히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24개월 연속 감소하며 역대 최장 타이기록을 세웠다.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내보내거나 창업할 때 아예 직원을 두지 않았다(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의미다. 통계청 관계자는 “점포에서 자동주문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지 않는 것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부진 등으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진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추가적인 충격이 온 것”이라며 “한국은 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자영업 폐업이 늘면 고용이 축소되고 이는 다시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빚을 내서 버티는 ‘한계 자영업자’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70조원 넘게 늘어난 755조원을 기록했다. 잔액 증가율이 10.2%로 반년 만에 지난 한 해 동안의 증가율을 벌써 넘어섰다. 대출자 수도 상반기에만 새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가 38만2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1년 동안 늘어난 대출자(14만4000명)의 2.65배다.

한국은행은 또 국내 자영업 가구 가운데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구가 올해 2월에는 2.3%에 머물렀지만, 이달엔 6.2%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 각종 예ㆍ적금을 깨고 보유한 주식 등을 팔아도 올해 누적된 가계수지 적자를 보전하지 못하는 가구가 그만큼 급증했다는 의미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정책실장은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은 결국 빚을 내 코로나19 고비를 넘기려 한다”며 “하지만 ‘수도권 5인 이상 집합금지’ 같은 연말 고강도 대책에 작은 모임마저 다 취소돼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연말 소상공인 매출 작년보다 32% 줄어

자영업자 매출 감소 폭 컸던 업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신용데이터]

자영업자 매출 감소 폭 컸던 업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신용데이터]

실제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연말 특수’가 물거품이 되면서 근근이 버텨 온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12월은 크리스마스·송년회 등으로 1년 중 씀씀이가 가장 큰 시기다. 주점·식당가는 불야성을 이루고, 주요 상점에 쇼핑객이 몰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올해는 연말 대목 기대는커녕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다.

전국 66만 소상공인 사업장의 결제 정보를 관리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12월 셋째 주(12월 14~20일) 전국 소상공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 서울은 43% 줄었다. 전년 대비 매출비는 둘 다 올해 들어 최저치다. 업종별로는 노래방(-94%)·전자게임장(-93%)·실내체육시설(-76%)·PC방(-57%) 등 대면접촉이 많은 곳의 타격이 도드라졌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식당(-48%)의 매출도 반 토막이 났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다.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노후 준비 없이 은퇴한 중ㆍ장년층에게는 자영업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경쟁력을 잃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폐업을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연승 차기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은 “기업이 현재의 일자리를 오래 유지하게 하고, 양질의 기업이 생겨나 신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해서 실직ㆍ은퇴자가  레드오션으로 변한 자영업으로 진출하는 유인을 줄이는 것이 자영업을 살리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지원을 한다면 지금 정부에서 거론되는 일시적 지원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자영업ㆍ소상공인들이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효과가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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