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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백신 정국서 도진 청와대·여당의 언론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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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코로나19의 고통이 너무 크다. 모두가 하루하루 힘겹게 견디고 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백신이 간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영국이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싱가포르 등에서도 일부 접종이 이뤄졌거나 올해 안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우리는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 그 이후에도 백신을 언제 받는다는 기약이 없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두 회사(화이자·모더나)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빨리 계약하자고 재촉하는 상황”이라고 했었는데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지난 7월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한 정세균 총리의 토로를 봐도 그동안의 백신 확보 준비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언론의 걱정을 “백신의 정치화” 매도 #자성 없이 책임 전가 급급할 때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반성은커녕 언론 탓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그제 강민석 대변인 명의로 낸 서면 브리핑에서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 달라”며 지난 4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관련 지시와 행보를 공개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한 언론의 우려를 ‘백신의 정치화’로 몰아세우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더구나 청와대 브리핑은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인가. 전형적인 책임 전가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한술 더 떠 여당의 언론 탓은 점입가경이다. 이낙연 대표는 그제 백신 보도와 관련, “일부 언론은 과장됐거나 왜곡된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며 “부정확한 보도로 국민의 불안을 키우고 국민과 정부를 이간하는 것은 방역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민생 안정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 출신의 여당 대표가 백신 없는 겨울을 나야 하는 국민이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기는커녕 페이스북에 쓴 글이 고작 언론 탓이었다. 앞서 김태년 원내대표도 일부 백신 보도와 관련해 “한국을 적대시하는 일본 극우 언론 기사처럼 보인다”고 언론 탓을 하면서 “안전성을 최대 검증하고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핑계를 댔다.

여권의 언론 탓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엄혹한 현실 앞에서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반성 없이 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행태는 치졸할 따름이다. 그럴 틈이 있다면 어떻게든 백신 확보를 위한 노력에 남은 힘이라도 모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더는 정부의 무능으로 국민을 힘들게 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