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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코로나 백신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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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저와 각료들부터 맞겠습니다. 저 같은 고령자에게도 백신이 안전함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책임 추궁보다 백신 마련이 우선 #국내 생산, 여유분 확보 시도해야 #아스트라제네카 결정 시 신뢰 필수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선 리셴룽(68) 총리의 감동적인 담화가 방영됐다. 거리두기는 한 단계 낮추고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는 낭보였다. 한때 1400명을 넘던 이 나라의 국내 확진자는 지난 10월부터 사라졌다. 그런데도 싱가포르는 소수의 백신 접종국에 낀 것이다. 리 총리는 백신 확보 경위도 소상히 전했다. “초기부터 노력했지만 쉽진 않았다”며 “200개 이상의 백신 물질이 모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 의미 있는 후보를 찾기 위해 제약 업체들과의 대화를 서둘렀다”고 했다. 리 총리가 이렇듯 정통한 건 자신이 백신 확보를 진두지휘한 덕이다.

하루 전인 13일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몹시 대조적이었다. 그는 여전히 ‘K방역’ ‘방역모범국’ 운운하며 “거리두기 3단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결단해 달라”며 말을 맺었다. “백신 내놓으라”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백신을 찾아 대통령이 직접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구체적 방안은커녕 웬 하나 마나 한 소리인가.

공무원들이 백신 확보에 미적거린 건 리더십 부재의 탓이 크다. 이들의 뇌리엔 애써 구한 신종플루 백신이 유효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2010년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700억여원을 낭비했다”고 국회에서 추궁당한 기억이 생생할 거다. 장관이, 대통령이 백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책임질 테니 무조건 확보하라”고 독려했다면 이랬겠나.

세상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다. 당국의 백신 확보 실패를 놓고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정부를 닦아세운들 동난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사댈 도리는 없다. 두 약의 내년 최대 생산량은 각각 13억, 5억 회분. 이미 팔렸거나 추가 구매 옵션이 걸린 물량은 화이자 13억, 모더나 6억2000만 회분이다. 한국은 정식 계약도 못한 터라 예방률 95% 내외의 백신 확보는 물 건너간 것이다.

절대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아홉 번이나 한 세월호 조사처럼 나중에 집요하게 하면 된다. 더 급한 건 백신이다. 이론적으론 두 대안이 있다. 먼저 우리가 만드는 거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코로나 백신 관련 특허는 예외로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게 통하면 특허와 관계 없이 국내에서도 만들어 쓸 수 있다. 다만 mRNA 기법의 백신은 고도의 생산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화이자·모더나에서 핵심 공정기술을 주면 가능하다”고 한다.

다음은 외국의 여유분을 얻는 거다. 예컨대 인구 3억2000만여 명인 미국은 추가 구매 옵션까지 합쳐 화이자·모더나 백신만 11억 회분이 있다. 두 번씩 맞아도 4억여 회분은 남는다. 두 방법 모두 외교력을 동원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결국 우리는 중대 기로에 서게 된다. 예방률 70%의 아스트라제네카라도 쓸지 결정해야 한다. 한 전문의는 정부에 비판적임에도 이렇게 토로한다. “독감 백신의 예방률도 60%에 불과한 만큼 안전성만 보장되면 아스트라제네카라도 맞는 게 옳다”고.

이 백신을 쓰기로 해도 결정적 난관이 남아 있다. 국민적 불신이다. 화이자·모더나가 충분한 미국으로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검토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자칫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못 받은 백신을 써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이럴 경우 과연 온 국민이 맞으려 하겠는가.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이런 결정들을 국민이 불신하면 안 맞겠다는 이들이 쏟아질 거다.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No one is safe until everyone is safe)’는 사실이다. 백신 기피를 막으려면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박사처럼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받는 인물 또는 전문가 집단이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일망정 믿고 따를 것 아닌가.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