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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예술가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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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인터넷에 누군가 카톡 문자를 캡처해 올렸다. 몇 주째 문 닫은 헬스장 트레이너에게 “잘 지내시느냐”고 안부를 물으니 “제가 요즘 회원님 댁으로 택배 배달하고 있어요”란 답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진짜인지, 창작인지 알 수 없지만 신체 건강한 운동 강사들이 코로나19로 업을 잃고 택배 전선에 뛰어든다는 얘기를 들은 지 오래다. 여기서 직종을 예술가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문화계 뉴딜’ 공공미술 프로젝트 #1000억 규모 졸속 부실사업 우려 #대통령 아들 전시 지원도 논란

코로나19로 피해 본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문체부가 사상 최대 규모로 내놓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논란이다. 내년 2월 마무리되는 ‘우리 동네 미술’ 공모사업이다. 총 948억원, 전국 228개 지자체가 참여해 ‘문화계 뉴딜’로 불린다. 우선 여러 지자체가 심사 공정성 논란, 표절 시비 등에 휘말렸다. 거제시에서는 심사 특혜 의혹이 나와 재공모에 법적 공방까지 벌어졌다. 부천시, 인천시, 울산시 등에서도 잡음이 나온다.

무엇보다 사업 발표, 공모에서 작품 완성까지 6개월로 진행 기간이 짧았다. 아이디어 구상, 제작에도 빠듯한 시간. 졸속 기획이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지역주민 참여, 공감대 형성이 필수인 공공미술이다. 해외의 유명 공공미술들은 10~30년에 걸쳐 완성되기도 한다. “연말까지 예산을 집행해야 해 급조된 프로그램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정하고 있다”는 한 지역 심사위원의 말도 보도됐다.

문체부는 “뻔한 공공벽화나 조형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예술작업을 선보이겠다”고 했지만 상당수가 환경미화 차원의 벽화 작업, 조형물 등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공공미술 아닌 공공근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칫 공공 흉물이 탄생해 지역민들에게 두고두고 시각적 불쾌감을 안기고 추후 관리에 돈이 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씨는 “주민들이 지역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미적 매개가 돼야 하는 공공미술의 본령은 온데간데없고, 예술성을 논하기 힘들 만큼 조악한 설치물이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고 썼다.

지난 4월 45억원을 긴급 편성한 서울시(서울문화재단)의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긴급지원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 아들인 미디어 아티스트 문준용씨가 1400만원을 지원받은 것이 알려지면서다. 오늘까지 서울 금산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의 작품들로, 시각예술 분야에서 7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대통령 아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비판 여론이 들끓자 문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착각하는 것 같은데 코로나 지원금 1400만원이란, 작가에게 수익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작가가 전시·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돈”이라며 “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코로나로 피해 입은 예술산업 전반에 지원금이 돌아가게 하는 것. 멈춰버린 산업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모를 통한 예술지원사업이 작가에게 용돈을 주는 게 아니라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쯤은 문화계의 상식에 속한다.

가령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지원 심사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감독들이 줄줄이 응모한다. 유명 감독들의 양보심 부족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예술영화 생태계가 어려우니 이해하고 넘어간다. 무엇보다 예술영화 지원사업의 취지가 영화인 복지가 아니라 예술영화 발전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선 작가 역량이 최고 기준이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피해 긴급지원’이다. 방역과 국민 피해에 대한 궁극의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의 자제가 피해 지원금을 타고도 뭐가 문제냐 따져 묻는, 적반하장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제목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쯤 되겠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