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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만으로 꾸민 조각공원 생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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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한진섭 조각가의 작업장 야외 마당 풍경. [사진 한진섭]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한진섭 조각가의 작업장 야외 마당 풍경. [사진 한진섭]

서울 둔촌동 일자산근린공원 안 허브천문공원에 내년 5월 중견 조각가 한진섭(64)의 작품 50여 점이 설치된다. 국내엔 조각을 테마로 한 공원이 여러 곳 있지만 한 작가 작품으로만 조성된 공원은 없다. ‘한진섭 조각공원’이 1호가 된다는 얘기다. 서울 강동구청은 ‘일상에 녹아든 예술’이라는 모토 아래 허브와 조각이 어우러진 공원을 꾸밀 계획이다.

돌 조각가 한진섭 작품 50여 점 #서울 일자산공원에 내년 5월 설치 #강동구와 협업…10년 대여 방식

한 작가는 “틈만 나면 공원을 찾아간다”며 “주민들이 사랑하는 공원 안에 제가 평생 작업한 작품을 설치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무와 꽃, 풀 등의 식물과 돌로 만든 제 작품이 잘 어우러져 세계적인 공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규모는 다르지만 구스타프 비겔란트(1869~1943) 작품 200점을 모아놓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트 파크(Vigeland Park)처럼 관광 명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진섭

한진섭

한 작가는 국내 대표적인 돌 조각가다. 경기 용인 삼성국제경영연구소의 조각상 ‘세계를 향하여’부터 서울 크라운해태 본사의 ‘해태’ 상,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정의의 가족’ 상, 수원 경기과학고 ‘하나되어’ 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강원도 대화성당부터 분당 성마태오 성당, 서울 논현2동 성당, 홍제동 성당, 천안 쌍용동 성당 등 전국 곳곳의 성당에 그가 깎아 만든 제단과 독서대가 놓였다. 차가운 돌이 친근하고 정겨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는 작품이 된다. 최태만 국민대 예술대학장은 한진섭을 “차가운 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작가”로 요약한 바 있다.

한진섭의 ‘행복하여라’ 연작, 185x90x113㎝. [사진 한진섭]

한진섭의 ‘행복하여라’ 연작, 185x90x113㎝. [사진 한진섭]

한 작가는 홍익대 미대, 동 대학원 출신으로 1981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1990년 귀국했다. 돌의 다채로운 질감을 풍부하게 살리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곡면으로 된 것이 작품의 특징. 최 학장은 “대지 위에 서 있는 선한 인간에 이어 따뜻한 시선으로 동물 형상도 표현한 작가”라며 “많은 새끼를 거느리고 유유자적 산책에 나선 돼지가족, 오순도순 모인 하마가족 등을 통해 대립과 투쟁이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을 작품에 녹여 왔다”고 말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1975년 이후 한진섭이 일관성 있게 추구한 소재는 ‘인간’이었다”며 “그의 작품의 특징은 ‘단순과 응축’이다. 소박한 형태미가 정교하면서도 부드러운 표면 질감을 통해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620 x170x380㎝, 화강석. [사진 한진섭]

620 x170x380㎝, 화강석. [사진 한진섭]

이번 조각공원 추진은 강동구와 작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강동구는 작가에게서 작품을 매입하는 게 아니라 일단 10년간 대여한다. 작품을 배치할 공간과 작품 운반·설치 비용을 제공하고 공원 관리 등의 역할을 맡는다. 10년 후 작품을 교체하거나 추가 전시한다.

“작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는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하루 10시간씩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1995년부터 경기도 안성의 작업장 마당을 조각공원 수준으로 꾸몄다. 한 작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다가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할 때 작품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푯말 대신 ‘직접 앉고 만져보라’라고 써 붙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강동문화재단 대표는 “여러 작가 작품을 모은 문집과 한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감동이 다르다”며 “작가가 수 십년간 자식처럼 빚어온 조각이 남다른 울림을 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주민들이 힐링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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