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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는 '자산 인플레' 걱정하는데···文 "주가 3000 희망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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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현장에서]대통령의 '주가 3000' 언급이 위험한 이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3차 재확산을 맞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는 지난 3월 1차 확산 때보다 더 가파르다. 환자가 늘고 있지만 병상은 부족하다. 서울의 중증환자 전담 치료 병상은 15일 현재 77개 중 2개만 남았다. 코로나 창궐 이후 9개월이란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한 것일까. 감염병 대응 인프라를 늘리기보다 ‘K-방역’을 자랑하기 바빴다.

경제 운영도 이와 닮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주가 3000 시대’를 치켜세웠다. 그는 “기업의 현재 실적과 미래 가치를 보여주는 주가 상승세는 한국 경제의 희망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라고 강조했다.

오갈 곳 없는 돈, 증시로 

전문가들도 이런 시각에 동의할까. 경제학자들에게 최근의 주가 상승 흐름은 오히려 걱정거리다. 코스피가 유동성의 힘으로 급등하면서, 실물 경제와의 괴리를 키우고 있어서다. 이른바 임금을 포함한 소비자물가는 정체한 상황에서 부동산·주식 가격만 오르는 ‘자산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코로나 충격으로 올 3월 1400선까지 하락한 코스피는 이렇다 할 호재 없이 2800선 가까이 올랐다. 지난 9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공매도 금지 조치는 내년 3월까지 연장됐다. 경기 부양을 위해 푼 돈은 부동산 규제로 우왕좌왕하다 ‘동학개미’의 실탄이 돼 주식 시장으로 투하되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38포인트(0.19%) 내린 2,756.82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38포인트(0.19%) 내린 2,756.82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주가와 실물 간 괴리 커졌는데 희망적? 

주가가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코로나 확산 직전인 올해 1월 100.7에서 지난 10월 98.3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코스피는 2159에서 2359로 올랐다. 산책하러 나간 개는 주인을 앞서거니 하지만 결국 주인을 따라가듯, 주가도 결국엔 실물 경제와 같이 가게 돼 있다. 주가가 침체한 경기를 따라 하락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입게 된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 실체와 상관없이 오른 주가는 결국 거품 붕괴로 개인 투자자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코스피 지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코스피 지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경제정책 ‘증시 살리기’ 올인 우려 

대통령이 직접 ‘주가 3000시대’를 희망의 상징으로 꼽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당장 내년 3월로 해제되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또 한 번 연장해달라는 여론을 부추길 수도 있다. 기준금리 결정이나 부동산 규제, 가계부채 대책 등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판단에도 정치가 개입할 수 있다. 대통령부터 ‘주가 3000 가즈아~’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어떤 시장 조절 수단을 쓸 수 있을까. 이미 기획재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이 되는 대주주 요건을 종목당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내릴 계획이었지만 정치 논리에 떠밀려 불발된 선례가 있다.

“충격 대비해 ‘경제 병상’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에 시급한 일은 끝나지 않은 코로나 발 시장 충격에 대비해 ‘경제 병상’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주가 상승에 들 떠 있을 때가 아니란 의미다. 가파르게 오른 증시를 뒷받침할 실물 경제는 어떻게 되살릴 것인지, 증시 거품이 꺼진 뒤 벌어질 가계 파산 대비책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살포한 과잉 유동성이 전 세계에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키우고 있다”며 “자산 인플레는 부의 양극화는 물론 노동 의욕까지 잃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치밀하게 장·단기 대책을 세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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